오피니언

[이수경의 삶과 문학] 쇠는 녹슬지만 손톱은 자란다

나희덕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

나희덕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

겪어보지 못한 이상 고온으로 전 지구가 타들어 간 21세기 ‘인류세(Anthropocene)’의 여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다.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이 내려갔다. 그 사이, 누군가는 ‘과학적으로’ 해로움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명백하게 해롭지 않을 리 없는 핵 폐기물 오염수가 바다에 뿌려졌다. 어떤 정치인들은 끝없이 법의 공격을 받았고, 그들의 정당과 정치는 무력했다. 인류세의 종말과도 같은 기후 위기와 사회적 재난,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는 자본세(Capitalocence)의 그늘 속에서 노동자, 소외 계급의 죽음과 몰락은 당연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에 뛰어든 20대 청년은 뜨거운 8월의 오후,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건물 6층에서 추락했고, 주야 맞교대를 하던 60대 쿠팡 물류배송 노동자는 싸늘한 10월 새벽 4시 무렵에 어느 빌라 복도에서 택배박스를 안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자본은 그들의 죽음에 사과하지 않았고, 정부는 공공의 성장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이는 세금마저 빼앗으며 어디론가 질주하고 있다. 그곳은 어디인가.

건국 기념일인 개천절, 일군의 사람들은 그날 하루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페이스북 접속을 거부했다. 홍범도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상징물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혐오 표현’이란 이유로 검열하고 삭제한 것에 대한 24시간의 저항이었다. 그런다고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그림자가 후퇴할 것인가, 누군가는 회의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세상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되돌려야 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아직은 버릴 수 없다. 무기 든 자들의 약탈과 학살과 점령에도, 어린 자식의 연한 몸을 찢는 포탄의 공포와 죽음의 순간에도, 백 년이 흐르고 오백 년이 지나도, 발목에 묶인 쇠사슬을 갉아 끝내 끊어내던 것이 인간이었다. 수많은 식민지 민중이 그랬고, 자연과 노동력 착취를 위해 벌인 잔혹한 침략 전쟁 속 피압박 민중이 그랬다. 쇠는 녹슬지만 인간의 손톱은 자란다. 녹슨 쇠붙이를 뚫고 풀이 자라고, 인종과 이념과 종교로 둘러싼 장벽에도 꽃이 피어난다.

개천절 24시간 저항의 시간, 나는 나희덕 시인의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를 반복해서 읽었다.

“오늘날 문명의 바깥, 자본주의의 바깥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불타오르고 녹아내리는’ 자본주의 말기적 증상과 전지구적 심각한 생태위기 속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론집은 자본세(Capitalocence)의 디스토피아를 증언하고 몸의 언어로 맞서 싸우며 저항하는 시인들의 시와 이 어둠의 바깥을 향해 눈을 두고 나아가자는 저자 나희덕 시인의 다급하고 간절한 호소로 가득하다.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이름 없는 것들이지요?//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아님,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부분


이제는 세상을 떠난 시인은 ‘이름 없는 것들은 죽여도 좋다고 명령하는 빌어먹을 차가운 세상’에서 죽어가는 존재를 애도하고, 저 멀리서 울고 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아 나의 사랑을”
- 나희덕 「뿌리에게」 부분


뿌리와 대지의 생명력에 대한 사랑의 서정시로 등단한 시인은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파헤쳐지고 착취당한 병든 흙과 함께 앓으며 오늘에 이르러 인류세의 퇴적물을 직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가볍고 단단하고 질기고 반짝이고 게다가 값이 싼/새로운 물질에 인류는 열광했지//눈비에도 새지 않고 썩지도 않는 이 화합물에/녹을지언정 쉽게 부서지지 않는//(중략)//깊은 바닷속의 산호초도 미세 플라스틱을 삼키고/창백해져가고 있어 죽어가고 있어//(중략)// 결국 플라스틱 지층으로 발굴될 우리의 세기, 제기럴 썩지도 않고 불멸할"
- 나희덕 「플라스틱 산호초」 부분


그러나 이름 없는 것들을 죽이는 차가운 심장들의 세월 속에서도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나는 말하는 짐승으로 자라나고 있으며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지층으로 발굴될 세기에도 누군가는 바다 쓰레기를 녹여 플라스틱 산호초를 만들고, 누군가는 모여 앉아 실로 산호초를 짜고 있고, 누군가는 플라스틱 만다라를 그리며,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죽음을 알리고 있다. (「플라스틱 산호초」) 끝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존재들.

문명의 바깥, 지구를 약탈하고 생명을 죽이는 자본주의의 바깥은 ‘말하며 자라나는 나’, ‘모여 앉아 산호초를 짜고 만다라를 그리는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리라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쇠는 녹슬어도 손톱은 자라고 꽃이 피어날 테니까.


나희덕 시인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뿌리에게」 「가능주의자」,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예술의 주름들」,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명의 바깥으로」 등 다수의 작품 출간.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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