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원조 슈퍼맨이 은퇴를 선언했다. 1978년 영화 ‘슈퍼맨’을 통해 처음 등장한 액션 영웅이었다. 45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그도 나이를 먹어 은퇴를 할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슈퍼맨은 외계인이니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한 것은 아니지 싶다. 어쨌거나 슈퍼맨이 은퇴를 했다. 그리고 슈퍼맨은 사람들을 구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대의를 내려 놓고 평범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며 돈을 벌고 있었다.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인 걸까? 아쉽지만 이 이야기는 2023년 가을 관객을 찾아 온, 극단 신세계의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의 이야기다. 이 연극은 마블 영화 속 영웅이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쫓아 만든 인간극장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전개된다. 관객은 120분 동안 슈퍼맨의 고군분투하는 삶의 현장을 직관하게 된다.
실제 ‘전세사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허구를 실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모큐멘터리 연극이다.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운 세 개의 LED 스크린은 마블 영화 장면, 뉴스 등 현실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영상들로 현실과 허구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스크린을 통해 연극 속 또 다른 공간을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무대 밖의 공간까지 극의 무대로 확장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 스크린이 온라인 플랫폼 공간으로 변신하면 무대는 온라인 플랫폼의 허상을 보여주는 현장이 된다.
현실을 허구로, 허구를 현실로
우리의 궁금증으로 돌아와서 슈퍼맨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자. 한물 간 영웅 슈퍼맨은 한국에서 전세 대출을 받아 전세를 살고 있다. 월세로 나가는 돈이 집주인 배만 불려주는 것 같아 택배기사, 배달, 서빙 등을 하며 모은 돈에 대출을 받아 새 빌라에 입성했다. 슈퍼맨은 월세만 전전하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세를 얻으라고 조언한다.
2년의 계약 기간이 다가오는 어느 날, 슈퍼맨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 계약을 한 부동산은 폐업한 지 오래였고, 힘겹게 알아낸 새 집 주인은 구치소에 들어가 있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슈퍼맨은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금융 공부, 즉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다. 투자로 성공한 삶을 보장한다는 온라인 플랫폼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 공부를 시작하는 우리의 슈퍼맨은 자신의 전세 보증금을 지키고 아파트를 통해 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정의를 찾아 싸우는 슈퍼맨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세’가 있는 나라.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큰 돈을 빌려주고 집주인은 일정 기간 세입자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전세 제도. 강화도 조약 이후 등장했다는 전세 제도가 자리를 잡은 것은 1970년 박정희 정권에 와서다. 전세 제도는 집으로 갭투자를 가능하게 했고 갭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파트보다 실거래가 조사에 취약한 신축빌라를 통해 수십, 수백 채의 집들을 소유하는 ‘빌라의 왕’, ‘빌라의 신’이 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 위태로운 피라미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피해자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동시다발 전세사기 사태에 이르게 된다. 연극은 친절하게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해 준다. 영상, 플랫폼 강의 등을 동원한 이 렉처 퍼포먼스는 극의 재미를 더한다.
슈퍼맨은 원더우먼, 배트맨, 스파이더맨, 캣우먼, 홍길동과 합세하여 ‘빌라의 신’과 한판 대결을 펼친다. 공격을 해도 절대 죽지 않는 빌라의 신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마블 영웅들의 대결은 끝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슈퍼맨의 전세 보증금은 안전할 수 없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법과 제도의 그물에 여전히 우리는 걸려들 것이고 그물의 허점에 빠지는 것은 늘 우리들의 될 것이 때문이다.
스펙터클 어드벤처 ‘부동산 오브 슈퍼맨’의 관전 포인트는 변화하는 슈퍼맨의 정의에 있다. 악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정의에서 열심히 일하고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며 사는 정의로, 다시 극의 후반으로 달려가며 바뀌게 될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그 정의는 슈퍼맨과 우리에게 편안하게 몸을 뉠 수 있는 집과, 안심하고 살아갈 만큼의 풍요와 부당한 일을 겪지 않을 확신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10월 22일(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
공연날짜 : 2023.10.14(토) - 2023.10.22(일) 공연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시간 : 평일 7시 30분/주말 3시/월 공연 없음 러닝타임 : 약 150분(인터미션 포함) 관람연령 : 만 13세 이상(중학생 이상) *관객과의 대화 : 10.21(토) 공연 종료 후 (실시간 문자통역(CART), 수어통역(KSL) 진행) 창작진 : 작·연출 김수정/글쓰기 김민경 김혜린 전웅 최가경/연출부(연출파트) 김혜린 전웅 최가경/연출부(기획파트) 김민경 박태인/무대감독 전웅/무대 Shine-Od/조명 윤해인/의상·소품 김우유/그래픽 김낙수장/음향 전민배/음악·라이브연주 김하민/영상 박영민/사진 IRO COMPANY/LED영상 뷰미디어/LED기술감독 유태선/무대어시스턴트 유승아 이정아/조명오퍼 송서영/영상오퍼 신지은/법률자문 박선영 변호사 (법무법인 해마루)/수어통역 고경희 고인경 김수년 신지선 윤영표 장진석/접근성매니저 강보름 출연진 : 고민지, 고용선, 김보경, 이강호, 이시래, 장우영, 한지혜, 목소리출연 김옥선 공연 문의 : 070-8118-7237
* 접근성 안내 - 자막해설(CC) : 전회차 - 음성해설(AD) : 전회차 - 수어통역(KSL) : 10.20(금), 10.21(토), 10.22(일) - 미니어처 터치투어 : 접근성매니저를 통한 사전예약 - 이동지원 : 접근성매니저를 통한 사전예약 (관람 1일 전까지) - 휠체어석 이용 관객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고객지원센터 02-3668-0007 전화예매 접근성매니저 0507-0178-4845(문자, 전화 가능)/카카오톡ID nu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