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금 바로 진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대마불사’, 대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어떠한 공적 자금과 특혜를 주어서라도 정부가 살려낼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대기업 하나가 휘청이면, 국가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의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모두가 다 아는 ‘원전 찬양’과 더불어 ‘삼전 불사’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린뉴딜을 이야기하고서는 동남아시아에 석탄발전소를 짓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두산중공업 살리기’라는 국내외의 비판이 쏟아진 바 있습니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먹여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의 위기 인식이 여전히 한 줌일 따름입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인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2023.03.15. ⓒ뉴시스


에너지 정책은 ‘위기 인식의 거울’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한 시대 인식은 곧 ‘경제발전’이었습니다. 1950~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 기업들, 특히 수출을 많이 할 수 있는 제조업 기업들을 위한 끊이지 않고 공급되는 전기는 경제발전을 위해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더 발전하는 경제를 위해, 더 많은 전기’는 에너지 정책의 전제였습니다.

그로부터 6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일쇼크, IMF, 후쿠시마 사고와 같이 여러 위기와 이로 인해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에 맞게 에너지 정책은 변화해 왔습니다. 과거와 다른, 여러 ‘국가적 위기와 과제’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에 맞게 ‘에너지 정책’은 바뀌어야만 하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에너지 정책은 이렇듯 정부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었습니다.

2023년 우리가 처한 위기는 매우 복잡합니다. ‘기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시작해, 여러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은 도산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거기에 얼마 전까지 ‘전염병 위기’를 겪었고,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는 전쟁과 미·중 갈등 속에, 기존의 세계화가 만들어 온 글로벌 분업 경제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위기 인식’을 찾기 힘든 ‘반도체클러스터 전력공급 계획’

이러한 현실에서 교육도 반도체 인력양성에 초점을 맞추라고 했을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은 오직 반도체 하나에 많은 지원과 관심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지원을 쏟아붓고 있는지,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3개월간 두 번이나 높여주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년 수조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도 아니고, ‘삼성전자가 300조를 들여 용인에 추진 중인 ‘반도체클러스터’ 사업’ 단 하나를 위해 정부의 에너지 정책 대부분이 모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이 10GW나 되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인데도,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에 깊은 위기 인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안보’나 ‘경제’위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LNG 발전소 6기를 건설해서, 급한 전기를 먼저 공급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입니다. 이미 애플과 같은 기업은 RE 100을 통해 100%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 기업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고, 유럽은 화석연료로 생산된 제품에는 추가로 세금을 물릴 계획입니다. 그렇기에 반도체 산업을 고민하면서 이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대통령의 반도체 사랑은 ‘반도체 산업의 실패로 말미암은 ‘안보나 경제위기’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기후위기’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남는 전기인 강원도의 신규 석탄발전소와 경상북도의 신규 원자력발전소의 전기를 끌어오겠다고 합니다. 이 전기들은 남아돌던 상황이었고, 굳이 석탄발전소를 반드시 지을 이유가 없었는데, 그 이유를 만들어낸 꼴입니다. 이렇게 석탄, LNG 등 재생에너지가 아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경제는 반도체클러스터가 완공되는 2042년 이후에도 이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응도 찾기 힘듭니다. 전남에 재생에너지가 많으니, 이를 끌어오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미 반도체 국가산단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재생에너지가 많은 호남 지역에 지으면 어땠는가라는 요구도 다수 있었으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경쟁사인 대만의 TSMC조차 대만의 반도체 산업단지를 여러 지역에 떨어뜨려 지었습니다. 수도권에 이미 80%의 반도체 산업이 몰려있는데, 에너지가 부족한 수도권에 또 대형 반도체산업단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지방소멸’ 위기는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지원해, 넌 행복해지고!”

그런데도 정부는 여러 시대적 변화와 위기를 고려했다고 말합니다. 즉,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나, 미중 갈등 속에서 전략자산이 되어버린 ‘반도체’를 지키기 위해서나,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나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도체 산업에 많은 지원을 하는 것은 “국가 경제는 물론 안보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창양 전 산업부 장관)”이며, “반도체 기업의 협력업체가 1300여개, 국내 10인 이상 반도체 기업이 1400개가 넘는 등 대기업의 설비 투자 확대는 중소, 중견기업의 매출과 고용 증대로 이어져 세수 증대로 이어질 것(국가 첨단산업육성 전략)”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사업이 잘 되도록 지원하면, 안보 위기도 해소하고, 경제위기도 해결되고, 내수가 진작되어 중소기업과 가계도 살아난다니, 참으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허경영 씨가 말했던 ‘내 눈을 바라보기만 하면, 넌 행복해지고, 넌 건강해질 거야’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06.07. ⓒ뉴시스

대기업이 아니라, 위기를 마주하라

독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 정책의 변화를 다룬 ‘노동 4.0’이라는 정책 백서를 내기 위해,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문서인 ‘녹서’를 통해, 어떻게 좋은 노동이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앞서 반도체클러스터의 전력공급 정책 내에 유실된 한국 사회의 위기들을 하나하나 매우 짧게 언급했지만, 독일의 ‘녹서’와 같이 위기마다 매우 깊은 사회적 토론과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포기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깊은 사회 전체의 논의를 거쳐 위기로부터, 서로를 지킬 수 있는 근간으로서의 에너지 정책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과 같은 ‘제조업의 위기’도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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