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오락가락 윤석열···이념이 중요했다가 안 중요했다가?

조변석개(朝變夕改), 아침저녁으로 일을 뜯어고쳐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조령모개(朝令暮改),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랬다가 저랬다가, 오락가락, 왔다리 갔다리, 변덕쟁이, 줏대 없는 놈 등등이 있겠다.

내가 기자 일을 시작한 이후 겪은 최고의 오락가락은 이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 짐 콜린스(Jim Collins)라는 경영학자가 『좋은 기업을 넘어…위대한 기업으로(원제 : Good to great)』라는 책을 쓴 적이 있었다. 이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100만 부 가까이 팔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콜린스는 이 책에서 11개의 위대한 기업을 소개한다. 영광의 주인공은 뉴커, 서킷시티, 애벗, 월그린즈, 웰즈파고, 질레트, 크로거, 킴벌리클라크, 패니마이, 피트니보즈, 필립모리스 등이다. 콜린스에 따르면 이들은 그냥 좋은 기업이 아니고, 무려 ‘위대한 기업’ 반열에 오른 이들이다. 콜린스는 “내가 꼽은 11개 기업의 성공 스토리는 시간을 초월한 기업 경영의 원리다”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런데 진짜 웃긴 일이 벌어졌다. 책이 나온 지 10년도 되지 않은 2009년, 서킷시티가 파산을 해버린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패니마이도 2008년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미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고 국유화됐다. 응? 콜린스 씨? 어떻게 된 겁니까? 좋은 기업 정도가 아니라 위대한 기업이라면서요? 시간을 초월한 기업 경영의 원리라면서요?

더 웃긴 것은 자기가 꼽은 기업들 중 상당수가 망하는 현장을 목격한 콜린스가 2010년에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을 내서 또 베스트셀러로 팔아먹었다는 사실이다. 와, 이 정도면 진짜 조변석개, 오락가락, 왔다리 갔다리의 경지에 오른 것 아닌가?

왔다리 갔다리 대통령

몸 낮춘 윤 대통령 “국민 늘 옳다…이념논쟁 멈추고 민생 집중”

지난주(18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을 보고 나는 육성으로 풉 하고 뿜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자 윤 대통령이 앗 뜨거라 하면서 저런 발언을 한 모양인데 진짜 웃기고 자빠졌다.

이게 왜 웃기냐면, 8월까지 이념이념 거리면서 온 나라를 이념 전쟁의 소용돌이로 내몬 이가 윤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때 윤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철학이 이념”이라고까지 발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10.10. ⓒ뉴시스

그렇다면 8월까지 ‘제일’씩이나 중요했던 이념이 단 두 달 만에 민생에 밀려 안 중요한 일이 된 이유가 뭔가? 민생이 더 중요해서? 그렇다면 고작 두 달 전인 8월에 민생보다도 이념이 훨씬 더 중요했던 이유는 뭔가?


설명이 안 되지? 당연히 안 될 것이다. 왜냐? 애초 그가 공산전체주의 운운하며 이념 전쟁의 칼을 내뽑은 그 시작부터 삽질이었기 때문이다. 쌍칠년대나 통할 반공주의 이념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보자는 얄팍한 판단, 그게 지금 시대에 먹힐 리가 있나?

그런데 그게 안 먹힐 거라는 것을 윤석열 대통령, 너님만 몰랐던 거다. 그러니 “이념이 제일 중요하다”며 황당한 의미 부여를 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어떤 말을 해도 수습이 되겠나? 지금 와서 민생이 이념보다 중요하다고? 어이쿠, 두 달 전 공산전체주의 운운하며 이념 전쟁 선포하던 그분은 윤석열이 아니라 윤똘렬이었나?

의지의 근육 부족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의지력이라는 단어는 과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논쟁의 주제는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냐, 존재한다면 어떻게 발현되느냐라는 지점이다.

여전히 수많은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대략 지금까지의 논쟁 결과를 살펴보면 의지력은 생각보다 정신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물질적인 부분에 훨씬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배고픈 사람에게 “의지력으로 이겨 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의지력은 결국 뇌의 작동에 관한 문제인데, 뇌가 의지력이라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포도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기진 상태에서 상대의 형편없는 외모를 칭찬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뇌가 관용을 베풀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지력과 비슷한 궤를 나타내는 자기 절제도 마찬가지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는 인내력과 자기 절제력을 연료(fuel)에 비유한다. 더 많이 사용할수록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의지력이 단지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인 문제에 더 가깝다고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지력이 전적으로 포도당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바우마이스터 교수에 따르면 의지력은 근육과도 같아서 훈련에 따라서 그 역량이 늘어난다. 팔굽혀펴기를 꾸준히 하면 횟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처럼 의지력도 훈련을 하면 그 크기가 커진다는 이야기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간이 의지력을 발달시킨 이유가 매우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즉 인류는 동료와 함께 사는 법을 익히기 위해 의지력을 키웠다.

바우마이스터 교수에 따르면 침팬지 무리는 음식을 앞에 뒀을 때 마구 뛰어가서 먹는 게 아니라 누가 먼저 먹는지 순서를 정해놓고 먹는다. 이래야 사회적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먹는 순번을 받은 침팬지는 먹을 것을 앞에 두고서 인내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게 바로 사회적 동물이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고 사는 대신 참고 노력하며 인내하는 이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윤 대통령, 뭔가 말을 하고 싶을 때 제발 좀 인내심이라는 것을 갖고 검토라는 것을 해라. 검사로 오래 지내면서 권력을 너무 오래 쥐고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인내하는 힘이 너무 떨어진다. 그러니 “이념이 제일 중요하다”는 헛소리가 그렇게 입에서 쉽게 나오는 것 아닌가?

의지력과 자기절제는 결국 포도당과 훈련의 문제다. 만약 그의 그 싼 입이 포도당 문제라면 포도당 캔디라도 보내줄 텐데, 일국의 대통령씩이나 돼서 포도당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아니냐? 결국 그의 가벼운 입이 낳은 문제는 훈련 부족이 낳은 참사라는 뜻이다.

일국의 지도자가 “이념이 제일 중요하다”, “아니 참, 그게 아니고, 이념보다 민생이 더 중요하다” 이러면서 왔다리 갔다리 난리가 났다. 국정 운영도 그의 입에 따라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는다. 한편으로는 코미디인데 한편으로는 비극이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나라의 운명이 실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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