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국감 출석 거부한 DL·SPC 회장...노동계 “국민 우롱” 청문회 요구

DL그룹 이해욱 회장(왼쪽)과 SPC그룹 허영인 회장(오른쪽) 자료사진 ⓒ뉴시스

계열사들의 반복적인 중대재해 발생으로 인해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된 DL그룹 이해욱 회장과 SPC그룹 허영인 회장 ‘해외 출장’을 핑계로 국정감사에 출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노동계에선 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디엘이엔씨시민대책위원회와 파리바게뜨공동행동은 24일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본사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두 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불출석 입장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행태이며,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겠다는 선언”이라고 규탄했다.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최대주주인 DL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디엘이앤씨(옛 대림산업)에서는 작년 1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부터 현재까지 총 7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해 총 8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디엘이앤씨는 단일 기업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최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으로, ‘살인기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현재 디엘이앤씨의 8번째 산재사망자인 20대 하청노동자 강보경 씨의 유가족이 디엘이앤씨 본사 앞에서 공식적인 사고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중대재해 다발 기업으로 디엘이앤씨 마창민 대표이사가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가 “책임을 통감한다”며 “안전대책을 강화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재발방지를 위해 “추가 예산 증액, 관리 인원 파견,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 대표이사의 약속은 허언에 불과했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그 약속 이후 올해까지 5건의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DL그룹의 계열사인 DL건설와 DL모터스에서도 지난해 각각 2명, 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고 강보경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 유가족이 24일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본사 앞에서 열린 재벌은 법도 국회도 무시하며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도 되는가! 이해욱·허영인 대기업 총수 국감 불출석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0.24 ⓒ민중의소리


SPC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최대주주인 SPC그룹의 계열사 SPL평택공장에서는 지난해 10월 20대 여성 노동자가 식품혼합기에 상체가 빨려 들어가 끼여 숨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주야 2교대 야간노동시간에 회사의 안전조치 및 안전관리 부재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를 계기로 당시 ‘피 묻은 빵을 먹을 수 없다’며 SPC 불매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일어났다.

이에 허영인 회장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3년에 걸쳐 1천억원의 안전투자도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월, SPC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샤니 성남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불할기와 배합볼 리프트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이에 올해 국정감사에 이강섭 샤니 대표이사가 불려나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국정감사 후 6일 만인 지난 13일 SPL평택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또다시 빵포장 기계에 끼여 손가락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허영인 회장의 약속 역시 허언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다보니 책임의 정점에 있는 DL그룹 이해욱 회장과 SPC그룹 허영인 회장이 국정감사에 직접 나와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졌고, 결국 국회 환경노노동위원회는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오는 26일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두 회장은 모두 불출석 사유서를 지난 23일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해욱 회장은 지난 8월부터 계획됐던 해외 순방을 사유로 들며 비행기표 사본까지 첨부했다. DL그룹 차원의 투자 확대 논의 또는 친환경 미래기술 확보를 위한 공동개발 MOU 체결을 위해 지난 6일부터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DL이앤씨가 시공한 건설현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중대재해 관련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해 드린다”며 “그룹 전체가 합심해 안전한 사업장 조성을 위해 쇄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영인 회장도 ‘K-푸드’ 세계화와 함께 SPC그룹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식품 박람회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예정된 유럽 출장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허 회장은 “SPC그룹을 총괄하는 황재복 대표이사가 출석해 증언하게 해달라”며 “SPC그룹 회장으로서 그간의 인명사고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안전대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유족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본사 앞에서 열린 재벌은 법도 국회도 무시하며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도 되는가! 이해욱·허영인 대기업 총수 국감 불출석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0.24 ⓒ민중의소리


이에 대해 디엘이엔씨시민대책위원회와 파리바게뜨공동행동은 “한마디로 말하면 공적인 임무 때문이 아니라, 기업의 해외 사업 확대를 위해 해외 경영진을 만나고 바이어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라며 “자신이 소유한 기업의 돈벌이용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해 국민 대표기구인 국회의 국정감사를 무용지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대표하고 있는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우롱하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두 회장이 직접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DL그룹과 SPC그룹은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음에도 그 약속들이 모두 허언으로 끝났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 그룹은 여전히 총수 일가의 돈벌이를 위해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보다 생산과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며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한 결정 권한은 총수가 독점하되 책임은 아래로 전가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바지사장’에 불과한 계열사의 대표가 아니라, 계열사들에 대한 최종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그룹 회장이 국정감사장에 나와 문제점을 지적받고 더이상 노동자를 죽지 않도록 하겠다고 엄숙히 약속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만일 두 회장의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한 해외 출장이 국정감사 불출석의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여져 이들이 국정감사 불출석에 대해 면책을 받거나 제대로 된 제재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게 된다면 앞으로 국회는 대기업 총수들을 국정감사장으로 불러내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국회의 권능은 땅에 떨어지고 국회는 대기업 총수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다. 이들은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제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기 위한 권위 있는 국민 대표 기구로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두 그룹 회장에 대해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며 “두 회장을 청문회에 세워 국민의 엄중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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