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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태원 참사 1년,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1년 전 10월 2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이 숨지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발생했다. 정규직 시험에 합격하고 친구들을 만나던 중에, 사촌 동생의 취업을 축하하러 가는 길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장을 보고 집으로 가던 길에,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주말 저녁은 순식간에 황망한 비극이 되고 말았다.

막을 수 있었고, 살릴 수 있었다. 사고 발생 4시간 전인 6시 34분부터 참사를 우려한 신고가 빗발쳤지만 누구하나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 시간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를 막느라 여념이 없던 수백명의 경찰력은 사고 발생 후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요원들도 속속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뒤엉켜 쓰러져 가는 인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세월호 참사 8년 만에 우리는 또다시 ‘과연 국가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참사 당일부터 지금까지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경찰도, 누구 하나 ‘내 탓이오’ 말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정부는 참사 지우기에 혈안이었다. 애도 기간은 단 일주일뿐이었고, 추모 공간은 지하 35m 속으로 묻어두려 했으며, 유가족을 향한 온갖 혐오와 조롱이 가짜뉴스로 활개를 쳐도 아무런 제지조차 하지 않았다. 목숨과도 같은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도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위로도, 공감도, 치유도 받지 못한 것이다.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됐지만, 밝혀진 사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더 이상의 진척도 없는 상황이다. 재판도 1년째 지지부진하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 즉 경찰과 용산구청은 “참사를 예견할 수 없었다”, “주최자 없는 행사는 예년에도 대비하지 않았다”며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그 사이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비롯한 6명의 주요 피의자는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아직 기소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고, 참사의 책임자로 꼽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되면서 지금까지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다.

참사 1년 만에 유족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세월호의 부모들이 그러했듯이 이태원의 유족들도 159명의 희생자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는 생존자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윤석열 정부는 그날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이제라도 반성하고, 유족들 앞에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명명백백 밝힐 것을 약속해야 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야말로 국가가 해야할 진정한 애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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