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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예술가는 성장하고 재즈는 아름답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 ⓒ판씨네마

계속 기다리면서 읽는 책이 있다. 만화 ‘블루 자이언트’ 시리즈다. 9년 전 2014년 11월 처음 국내에 선을 보인 ‘블루 자이언트’ 시리즈는 10년이 다 되어가는 2023년 10월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일본의 만화가 이시즈카 신이치가 2013년 일본의 격월간 잡지 빅코믹을 통해 연재를 시작한 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했다. 세계 최고의 재즈 음악인이 되려는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가 열정 하나만 가지고 고향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며 도전을 계속하는 이야기다. 그 여정을 따라 ‘블루 자이언트’는 ‘블루 자이언트 슈프림’, ‘블루 자이언트 익스플로러’, ‘블루 자이언트 모멘텀’으로 제목을 바꿔가며 시리즈를 이어간다. 한국 만화팬들과 음악팬들에게 호평 받은 작품인데, 일본에서는 2023년 4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이 1,100만권에 이를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블루 자이언트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었다. 오래 진행 중인 만화가 영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작 자체가 만들어낸 감동 때문이기도 하다. 재즈 뮤지션의 이야기를 영화나 뮤지컬로 들으며 보지 않고, 만화책이라는 매체로 보고 읽어야 하는 한계에도 블루 자이언트는 다이를 비롯한 재즈 뮤지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순간의 환희를 고스란히 전달해낸다. 여기에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는 음악인들의 성장과 갈등과 선의가 감동적으로 더해진다. 만화를 읽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져 흐르는 눈물을 닦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 메인 예고편

지난 10월 18일 한국 개봉한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는 만화 가운데 고향에서 도쿄로 이어지는 일본 배경의 첫 번째 시리즈를 영화로 옮겼다. 주인공 다이는 도쿄에서 젊은 재즈 피아니스트 사와베 유키노리를 만나 함께 팀을 하자고 제안하고, 한 번도 드럼을 쳐본 적 없었던 고향 친구 타마다 슌지가 우연히 드럼 스틱을 잡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은 다이이지만 유키노리와 슌지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청춘 성장 드라마를 겸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유키노리나 슌지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자신만만한 유키노리와 서툰 슌지, 낙관적이면서 세심하기도 한 다이의 캐릭터는 예술가의 초상이며 인간의 자화상이다. 서로 다른 처지와 성격으로 재즈에 빠져들고 재즈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은 꿈을 찾아 헤매는 젊음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모두가 간절하고 막막하고 답답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음악으로 전환하는 역할은 영화 음악을 맡은 일본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히로미의 몫이다. 열정적인 연주로 국내 재즈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히로미는 극 중 유키노리가 써내는 세 연주자의 밴드 JASS의 창작곡 ‘First Note’, ‘New’, ‘We Will’을 비롯한 수록곡 29곡을 만들었다.

바로 그 음악이 영화의 3D 모델링, 작화, 연출을 보며 느끼는 아쉬움을 덮고도 남는 영화의 주역이다. 색소폰 연주자 바바 토모아키, 드러머 이시카와 슌이 맡은 트리오 연주는 영화의 말미에 꿈의 클럽인 So Blue에서 펼쳐지는 연주를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복수심에 불타 광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 ‘위플래쉬’가 보여주지 않은 연주자의 탁월한 플레이와 음악의 아름다움은 왜 이토록 이들이 재즈에 모든 것을 다 내거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해준다. 배우가 실연하는 영화가 해내기 어려운 플레이를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손색없이 펼쳐 보여준다. 히로미, 토모아키, 슌은 원작 만화가 눈으로 상상하게 했던 음악을 실제로 듣고 빠져들게 연주한다. 흡사 재즈 트리오의 라이브 콘서트장에 와 있는 듯한 연주와 완성도 높은 송라이팅은 재즈를 계속 들어왔던 이들까지 감동하게 만들만큼 탄탄하다. 좋은 음악감독과 연주자의 역할이 음악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특히 히로미가 연주한 극 후반 유키토리의 서정적인 피아노 솔로는 관객의 눈물샘을 열어버리는 명장면이다.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있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 ⓒ판씨네마

영화 속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음악의 감동을 뒷받침 한다. “전력을 다하면 반드시 전해질거야”라는 믿음과 “한계가 없다”는 간절함, 솔로연주에서는 “내장을 까 보여주어야 한다”는 치열함 뿐만 아니다. 미숙한 동료 연주자를 기다려주고, 드러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계속 클럽에 와주는 마음,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리며 애송이 연주자들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따스함, 최고의 재즈 클럽이 성장가능성 있는 연주자들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는 마음은 이 영화를 따스한 휴먼 드라마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재즈가 더 좋아지고, 재즈를 더 사랑하고 싶어진다. 재즈 공연을 보고 싶고, 재즈 페스티벌에 가고 싶어진다. 예술가는 성장하고 재즈는 아름답다. 영화가 전해주는 마법 같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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