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2023.10.26 ⓒ뉴시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전국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증원 수요 조사를 실시한 뒤 2025년부터 정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와 함께 늘어난 의료진이 필수의료로 유입되도록 하는 정책도 추진하기로 했지만, 공공의대 신설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6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으로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전국의 40개 의대 입학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정원의 10%인 351명을 감축한 이후 2006년부터 현재까지 18년째 3천58명으로 동결돼 있다. 이에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게 그간 정부가 밝혀온 기본 입장이다.
조 장관은 이날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2.2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 OECD 평균 3.7명 대비 최하위 수준”이라며 “지역별 격차도 서울은 인구 1천 명당 3.47명인 반면 경기는 1.76명, 경북은 1.39명으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 추세를 고려했을 때 전체 인구가 감소해도 의료 이용이 많은 고령인구가 증가한다면 오는 2050년까지 의료 수요가 지속적으로 많아질 거라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늘어난 의료인이 필수의료로 유입되도록 ‘정책패키지’를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정확한 증원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우선 정부는 이날부터 2주간 전국 40개 의대 등을 상대로 한 사전 수요조사, 전문가 연구 결과 등을 거쳐 증원 규모를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학에 증원 여력이 있는 경우 2025학년도 정원에 우선 고려하고, 증원 수요는 있지만 추가 교육 역량이 필요한 경우는 다음년도인 2026년 이후 단계적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증원 방식도 여러 가지를 두고 검토 중이다. 증원 방식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기존 의대 정원의 확대, 민간의대 신설, 공공의대 설립 등이 있다. 정부는 일단 기존 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조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원이 50명 이하인 소규모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조 장관은 “40개 의대 중 정원이 50인 이하인 곳이 17개”라며 “교육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최소한 정원이 8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대통령께 보고드렸다”고 밝혔다. 이 경우 500여 명의 증원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된다.
조 장관은 지난 정부가 추진한 지역 공공의대 신설이나 현재 국립의대를 통한 지역의사 양성 제도 도입 여부에 대해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신 정부는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인력을 유입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의사단체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형사처벌 특례를 확대해 필수의료 종사자의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다.
또한 중증응급과 고난도, 고위험 의료행위에 대해 수가를 인상하는 등 공공정책수가를 통해 지역과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대강당에서 열린 의사인력 수급 실태 발표 및 의대정원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시민사회에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의대 증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행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의지를 밝혔으나 정작 이를 추진하기 위한 의대 정원 증원 규모와 방식을 발표하지 않았다”며 “모처럼 여야 정치권과 국민이 한목소리로 의대 정원의 획기적 확대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협회의 강경 투쟁 방침에 물러섬 없이 조속히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확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 상집위원인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총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선 어떤 정책수단을 써도 과목 간,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경실련은 의사 인력의 국제 비교 및 의료이용량 변화에 따른 수급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의대 정원이 최소 1천 명 이상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인 송기민 한양대 보건학과 교수는 “OECD 기준 의사 공급 부족 74천773명을 2030년에 해소하려면 2020년 입학 정원 6천 명 이상이 필요하다”며 “즉, 당장 의대 정원을 현재 정원 3천 명에서 매년 3천 명을 추가해 6천 명을 10년간 증원해야 수급불균형 해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장 지역 간, 과목 간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소 1천 명 이상 의대 입학 정원을 증원해 부족한 지역 필수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실련은 부족한 지역의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권역별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600명가량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국회에는 공공의대 설립 및 지역의사제도를 위한 법안이 15개나 발의돼 있지만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대 정원 확대에) 가장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은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도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필수의료 종사자의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부담을 완화하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실련 중앙위 부의장인 신현호 변호사는 “모든 인간이 하는 행위는 위험하다. 건설현장도 그러고 다른 일반 산업현장도 마찬가지”라며 “그런 점에 있어서 (필수의료 종사자의 의료사고에 대해서만 면책하는 것은)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정치적 타협을 위해서 정부가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오후 3시 제15차 의료현안 협의체를 갖고 의협과 지역·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과 의사 인력 확충 등에 대해 논의한다. 협의체는 애초 오는 11월 2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개최일이 앞당겨졌다.
11월 2일에는 제2차 보건 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열린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한 보건 의료정책 심의 기구로, 다양한 주체들이 보건 의료정책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대학입시 보건 의료분야 입학정원 조정 결과를 복지부가 교육부에 매년 연말에 통보해야 하는 만큼, 정부의 계획대로 2025년도 입시부터 늘리려면 구체적인 증원 규모는 오는 12월까지 확정해야 한다.
26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제15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2023.10.26.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