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임 정부 비난하더니 ‘맹탕’ 연금 개혁안 내놓은 윤석열 정부

정부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그랜드플랜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했고 취임 이후부터 연금 개혁을 3대 핵심 국정과제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31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안은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방향도 모호하며 수치 하나 제시하지 못해 구체성도 떨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연금 개혁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해서 폭탄을 키웠다’는 비난을 쏟아내던 당사자들의 정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재정안정화를 위해 ‘더 내고 늦게 받도록 하겠다’고 말을 꺼내놓고 줄곧 여론을 살피더니 결국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당위만 제시하고 수치는 내놓지 못했다. 누가 얼마나 더 낼지, 언제부터 받을 수 있는지, 수령액은 어떻게 변할지 핵심 쟁점은 모두 피했다. 그러면서 국회 제출 이후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며 공을 국회에 넘겼다. 정부안이 명확해야 공론화 과정도 논점이 부각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문제설정도 정확하지 않고 내용도 근본적이지 못하며 무엇보다 태도 면에서 집권세력으로서 책임감이 없다.

국민연금의 본래 취지인 노후소득 보장 강화는 방향조차 찾기 어렵다. 연금 개혁 과제는 수많은 이슈가 존재하지만 적어도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해소고, 이것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높은 것도 없다. 현행 제도로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여성, 플랫폼노동자, 문화예술인, 청년 등 국민의 40%가 넘는 사람들이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각지대 해소를 연금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지역가입자 지원 범위를 소폭 확대하고 바뀐 다자녀 기준에 맞게 첫째 아이부터 출산크레딧을 적용한다는 것 외에 새로울 것이 없다.

반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확장과 인력 충원, 더 나아가 월급을 올려주고 성과급을 더 줘야 한다는 계획은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기금운용에서 해외투자 비중을 60%로 확대하고 내년부터 대체투자 분야 전문인력을 대폭 확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뉴욕, 런던, 싱가포르에만 있는 해외사무소도 샌프란시스코를 추가하겠다는 아주 세부적인 안도 담았다. 다수 국민이 빈곤노인으로 전락할 위험 앞에서 개별과제 사이의 무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양새다.

총선이 눈앞이라 민감한 연금 개혁 과제를 구체적으로 내놓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과 재정안정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조건에서 더 깊고 풍부한 논의를 거쳐서 반드시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핵심 개혁 과제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이렇게 책임감 없는 계획으로는 공론화 단계를 거쳐도 논의할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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