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고위 당정대 협의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기업부채로 인해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가계부채 문제는 잘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특히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나 영끌 투자‘ 이런 행태는 정말로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의 이날 발언은 그야말로 유체이탈이다. 점진적으로 감소하던 가계부채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 윤석열 정부이기 때문이다. 한국 가계부채는 2022년 2/4분기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금리 상승에 개인들이 부채상환으로 대응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 기조가 유지되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가계부채는 지금까지 완만한 감소세를 이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 가계부채가 다시 조금씩 늘어나더니 8월에는 급증 양상을 보였고 지금까지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은 정부 정책이다. 각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유동성을 회수하는 시기에 한국은 부동산 가격을 지탱하기 위해 돈을 푸는 정책을 썼다. 정부는 지난해 말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금융대출 완화책을 내놓았고, 올해 1월 30일부터 한국주택금융공사는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에 역행하는 특례보금자리론 접수를 시작했다. 결국 50년 만기 대출을 내놓으면서 소득에 대한 대출 비율을 제한하는 DSR 규제마저 우회할 길을 열어줬다. 그 결과 부동산 가격 하락은 일단 막았을지 모르나, 가계부채 위험은 증가했다. 문제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집중된 시기가 올해 7, 8월이다.
김 실장의 말처럼 가계부채 문제는 잘 관리해야 한다. 김 실장이 말한 것처럼 터지면 97년 외환위기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 동안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펼칠 때는 가계부채에 눈을 감다가 이제 와서 심각하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고, 자신들이 불을 지펴 놓고 전 정부 탓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누구 탓이 더 큰지 따지기 전에 가계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상황을 무시하고, 억지에 가까운 남 탓이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다. 이 비율이 100%가 넘는 나라가 얼마 안 된다. 지금과 같은 고금리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이자 부담은 시간에 비례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문제를 논의한다면서 당정대가 한자리에 모여서 특별히 내놓은 대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금이라도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킨 부동산 부양 같은 오판을 공정하게 평가하며 현실을 직시해야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텐데, 남 탓으로 책임 회피만 하고 있어서는 실질적인 해결책은 요원하다.
가계부채 중 자영업자 대출은 2022년 1/4분기 말 960.7조 원에서 1년 뒤인 2023년 1/4분기 말에는 1033.7조 원으로 70조 원이 증가했다. 연체율은 0.47%에서 1.0%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특별히 지원해 준 혜택도 없는데 자영업자 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지금 정부가 신경 써야 하는 지점은 오히려 이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