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음의 저울] 슬픔의 시간 이겨내는 애도공동체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이하며 슬픔의 시간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 기억 속에서 기억을 지우려고 드는 세력들의 농간에 맞서 필사적으로 참사의 기억을 붙잡고자 하는 그 타는 가슴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그들의 절절한 마음이 부딪치는 곳에 역사에 흔적이 새겨지고 있다는 것만은 알겠다. 유가족들이 주체가 된 1주기 추모제에 많은 시민들과 야당들이 참여하여 추모와 위로의 자리를 함께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당국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은 어느 교회 추모예배에 참여해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나 진상규명과는 먼 이야기로 다시 한번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망각하는 추태를 보였을 뿐이다.

1주기를 맞이했지만 그동안 무엇을 규명했고 무슨 대책이 세워졌는지 기억나는 것은 없다. 영정사진과 위패조차 없는 조문을 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34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강령이 헌법이라면, 국가적인 참사가 왜 생겼는지를 묻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당국자의 책무일 것이다. 이미 불신과 무능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현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그래도 사람이라면 응당 헤아릴 법한 고통마저 외면하는 행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이 참담할 뿐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과거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등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다.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핵발전소를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며, 원전 사고는 사전 예방이나 사후 대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죽음의 땅이 된 후쿠시마는 원전 사고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근본적인 대책 없이 일본 당국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핵 오염수를 지난 8월 24일부터 바다에 버리고 있다. 어떤 나라도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 정부의 묵인하에 일본 정부는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 눈이 멀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2023년 한국 정부의 원전 오염수 방류 대책 예산이 3,693억 원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이보다 40퍼센트 증액안을 편성했다고 한다. 왜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할까. 2023년 우리나라의 원전은 현재 25기가 가동 중이며 울진, 울산에 3기를 추가로 짓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권역에는 16만 명이 살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고리 원전의 경우 반경 30킬로미터 권역에는 340만 명이 살고 있다. 한 번 사고로도 치명적인 일이 일어날 테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만약 후쿠시마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칠 것이 뻔한 데도 정부 당국자들이 신념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 사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열린 가운데 한 유가족이 추모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10.29 ⓒ민중의소리


재난의 시대라는 현대 사회
재난으로 인한 상실과 슬픔을 나눌
‘애도 코뮤니타스(communitas)’를 기대한다


현대 사회를 재난의 시대라고 한다. 재난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은 나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국가조차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밀려서 죽고,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 생겨도 국가는 책임지지 않는다. 선거 때만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홍보하기에 열을 올린다. 비이성적 외눈박이 이념 타령에 빠져버린 대통령과 당국자, 여당의 무능함과 무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의 희생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사회적 참사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고통은 언제든 나와 우리 가족의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지난 1년 동안 버텨온 유가족들의 일기와 발자취 또한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게 아니다. 재난에 취약한 나라, 개인의 안전을 무시하는 나라에 사는 이상 언제라도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시간 속에 다양한 사건을 접한다. 의미 있는 일도 경험하지만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도 생긴다. 수많은 사건사고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일 것이다. 누구나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는 없을까. 지금보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보와 자원을 만들고 축적해서 새로운 희망과 회복의 과정으로 나아갈 수는 없을까. 개인의 애도와 사회적 애도를 함께 할 수 있는 애도 공동체, ‘애도 코뮤니타스(communitas)’를 통해 슬픔과 두려움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