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버린 김동연의 ‘경기북도 설치’, 국힘 한탕주의에 36년 숙원 ‘흔들’

지난 9월 25일 오전 경기북부청사 평화누리홀에서 열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비전 선포식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비전 선포를 하고 있다. ⓒ경기도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구상이 현실화하던 가운데 폭탄이 떨어졌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느닷없이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자는 주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관련 특위까지 만들었고, 김포시를 넘어 서울과 인접한 다른 지역들까지 들썩이게 하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밀어붙이면서 논의 시작 36년 만에 실현을 코앞에 두고 악재를 만난 것이다. 기득권을 버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김동연 지사의 결단으로 추진되던 경기북부 주민의 숙원이 정략적 계산 탓에 자칫 좌초될 위기를 맞았다.

경기남부에 비해 중첩규제로
열악한 경기북부
1987년 대선부터 제기된
‘경기 분도론’


경기도는 한강을 기준으로 남부 20곳, 북부 11곳 등 모두 31개 시·군이 있다. 그런데 경기 북부는 북한과 인접한 접경지역이고, 수도권정비권역, 개발제한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중첩규제를 받으면서 남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개발·저성장 지역이다. 경기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경기북부 지역총생산 연평균 증가율(2015~2018년)은 3.5%로 남부 4.46%보다 낮다. 또 2019년 기준 경기 북부 제조업종 사업체는 1만 8천 개 수준이어서 경기도 전체 제조업체(13만 3천 개) 가운데 13~14%에 그쳤다. 연구소도 경기북부엔 경기도 전체 연구소 1만 2천806개 가운데 11.8% 수준 1천380개에 불과했다.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한 혁신역량 기반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경기도 남부와 북부의 격차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제기된 주장이 바로 ‘경기도 분도론’이다. ‘경기도 분도론’이 처음 이슈로 등장한 건 지난 1987년이었다. 13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한수(한강) 이북은 한수 이남에 비해 생활권이 다르고, 경제적 이해도 달리한다. 그래서 나는 한수 이북의 경기도를 경기북도로 신설하는 문제를 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구상하고 있다”며 경기북도 설치를 공약했다. 이후 1992년 대선에선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공약으로 등장하는 등 ‘경기도 분도론’은 온갖 선거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었다.

선거마다 단골 공약이지만,
선거 이후엔 번번이 무산
김동연 당선 이후 현실화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매력적인 카드라는 의미지만, 다른 한편으론 약속이 계속 이뤄지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거 때 분도론을 주장했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막히고 말았다. 주민과 지역 정치인들이 여러 차례 추진위를 결성해 여론화에 나섰고, 여러 국회의원이 관련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경기도 분도론’이 그동안 추진에 탄력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역대 경기도지사들이 ‘신중론’을 내세우며 추진에 미온적이거나, 반대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지사로선 자신의 권한을 스스로 줄이는 일이기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 5월 2일 오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국회토론회엔 여야 의원 모두가 함께 했다. 토론회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 윤호중 국회의원, 안민석 국회의원, 정성호 국회의원, 심상정 국회의원, 임종성 국회의원,김성원 국회의원, 최춘식 국회의원, 등이 카드섹션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도

하지만, 김동연 지사가 당선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전 지사들의 미온적 태도와 달리 김동연 지사는 경기북도 설치에 적극 나섰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17일 열린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김동연 지사를 향해 “(경기북도 설치는)본인 기득권 절반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라며 “지금 하겠다는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 존경을 표한다”고 말한 것도 이전 도지사들과 달랐던 김 지사의 행보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기득권 버린 김 지사 결단
2026년 7월 출범 목표로
여야 설득하며 청사진 제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향해
주민투표 실시 등 협조 요청도


김 지사는 후보 시절 “낙후되고 소외된 경기북부 발전을 위해 제주·세종 같은 특별자치도로 조성해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면서 ‘경기북도 설치’를 공약했다. 당선 이후엔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산하에 ‘경기북부특별자치도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특위는 지난해 6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엔 국민의힘 경기도당 위원장인 김성원 국회의원(동두천·연천)과 민주당 김민철 국회의원(의정부 을), 한국지방자치학회를 공동주최자로 참여하면서 여야는 물론 관련 연구자들까지 함께했다.

도지사 취임 이후엔 더욱 속도를 냈다. 경기도는 지난 2월 경기연구원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비전?발전전략’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엔 충분한 도민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2026년 7월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겠다는 목표도 발표했다. 당시 경기도는 2023년 비전 수립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2023~2025년 특별법 제정과 보완, 2025년~2026년 출범 준비, 2026년 7월 1일 출범이라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지난 9월 25일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통해 2040년까지 17년간 총 213조 5천억 원의 투자와 민간자본을 유치하고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0.31%p 끌어올리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9월 26일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첫 행정절차로 정부에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및 주민투표 실시’를 공식 요청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 달 뒤인 지난 10월 27일 김 지사는 경북도청에서 열린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의 필요성과 경기북부 개발을 위한 비전을 설명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주민투표를 요청했다. 김 지사는 “경기북부가 자치도가 되면 경기도와 서울에 이은 세 번째로 큰 광역지자체가 되며 경기북부 GRDP 1.11%p, 대한민국 GDP 0.31%p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그동안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에 대한 많은 정치적인 구호가 있었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기득권 때문에 되지 않았다. 이번이야말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추진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경기도민, 74.2% 설치 찬성
국민의힘 의원 16명도
관련 법안에 이름 올려


경기도 전역을 돌며 주민에게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 과정을 6개월 동안 거쳤다. 지난 10월 31일 경기도가 발표한 숙의 토론 결과에 따르면 설치를 찬성하는 비율은 74.2%로 나타났고, 주민투표 참여 의사는 85.4%로 나타났다. 특히 숙의 토론이 거듭될수록 찬성 비율과 투표 참여 의사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비율은 1차 조사에서 3차 조사까지 동의 비율이 25.4%p 상승했고, 주민투표 참여 의사도 51.1%p 높아졌다.

숙의토론을 진행하며 점차 경기도민들의 경기북도 설치 찬성 비율은 높아졌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숙의공론조사 결과 보고자료

정치권 분위기도 여야를 막론하고 호의적이었다. 21대 국회 개원 직후엔 지난 2020년 6월 10일 ‘경기북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을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각각 국회에 제출했고, 김동연 지사가 당선된 이후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주장하자 이에 맞춰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각각 제출해 현재 관련 법안 3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에 이름을 올린 국민의힘 의원도 강기윤, 김성원, 박대수, 박덕흠, 박성민, 배준영, 성일종, 안병길, 이명수, 이인선, 이종성, 조명희, 지성호, 최영희, 최춘식, 태영호 등 16명에 이를 정도로 국민의힘에도 경기북도 설치에 호의적인 이들이 많았다.

경기북도 포함 여부 두고
논란 일었던 김포 이용해
흔들기 나선 국힘
김동연 “이념으로 국민
갈라치기 하더니, 이제는
‘국토 갈라치기’까지”


물론 경기북도 설치라는 큰 틀에선 같은 의견이지만, 경기를 남북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선 논란이 있었다. 지난 10월 31일 경기도가 경기북도 관련 숙의 토론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이와 관련한 언급이 나왔다. 당시 오후석 경기도 행정2부지사는 “문제는 김포다. 북도 설치를 처음 논의할 때부터 북도로 해야 할지, 남도로해야 할지 논란이 컸던 곳이기 때문이다. 북도 설치 여론조사 과정에선 남부로 놓고 조사를 했고, 숙의 토론 과정에선 고양시와 같은 생활권으로 보고 북부로 놓고 진행했다”면서 “현행 법률상으로는 경기 남부에 있는 상태이지만 북도 설치 특별법안에는 경기 북부로 보고 있어서 기준에 따라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 지사는 지난 9월 26일 정부에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김포시는 경기북부 범위에 포함하지 않고 편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주민 의견을 수렴해 편입 여부를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국민의힘 소속인 김병수 김포시장 등이 서울 편입론을 꺼내 들며 맞불을 놓으면서 논란이 더욱 커져 버렸다. 불과 한 달여 만에 당 조직이 이를 공식화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김기현 대표가 10월 30일 김포시 등 서울 생활권 도시들을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일엔 ‘수도권 주민편익 개선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위원장을 맡은 조경태 의원은 “김포뿐 아니라 구리와 하남, 고양, 부천, 광명 등 최소한 5~6군데는 서울로 편입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며 불씨를 더욱 키웠다. 서울과 인접한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등이 지역에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불길에 뛰어들었다.

김 지사는 지난 1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이런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지사는 “경제와 민생은 뒷전으로 하면서 이념으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더니, 이제는 ‘국토 갈라치기’까지 하고 있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는 경기도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한민국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추진하는 ‘경제정책’이다. 반면, 여당 대표가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적 계산’에 불과하다. 모든 절차와 방법은 무시한 채 총선을 앞두고 급조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지사는 이어 “그야말로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적 계산’만 남았다.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이라면 분명 자충수가 될 것”이라며 “지금 김포시에 가장 시급한 것은 지하철 5호선 연장 노선 확정과 예타 면제를 통한 조속 추진이다. 정략에 쏟을 힘이 있다면 지하철 5호선 연장에 쏟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욱 경기도 대변인도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한다고 하면 인근인 고양·의정부·남양주·과천·광명·안양시 등 서울을 둘러싼 경기 내 지자체들도 전부 서울로 주소를 바꿔야 하는 것이냐”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홍철호 국민의힘 경기 김포을당협위원장이 지난 9월 말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포 지역에 내 건 현수막. ⓒ홍철호 페이스북

사실, 서울 인접 도시의 서울시 편입 추진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절차적으로만 봐도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쳐야 하고,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 등 다른 지역의 여론은 물론, 헌법에 규정된 국가 균형발전 원칙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까지 첩첩산중이다. 경기북도 설치 논의가 공약으로만 30년 넘게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김동연 지사가 경기북도 설치 공약을 걸고 당선됐음에도 4년짜리 로드맵을 만들고 단계적으로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고,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약세를 면치 못해온 국민의힘은 이런 현실적 고려를 무시하고, 과거 재개발 광풍을 몰고 온 뉴타운 공약처럼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한탕을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국민의힘의 정략에 기득권을 버린 김 지사의 결단, 경기북부 발전을 위해 여야가 함께 고민해온 시간, 지방 발전의 미래가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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