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조를 파렴치한으로 모는 데 재미 들린 정부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면제제도 등 기획감독 중간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20년 4월 총선 직후 정국을 휩쓸었던 사건은 바로 정대협 대표와 정의연 이사장을 지냈던 윤미향 의원의 횡령 사건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수십 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헌신해왔던 윤미향 의원은 이를 계기로 순식간에 ‘피해자의 돈을 훔친 파렴치한’으로 몰렸다.

윤 의원뿐만 아니라 정의연에 대한 무차별적인 언론보도가 쏟아졌고, 이를 넘어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가 벌어졌다. 피해자 쉼터를 운영하며 할머니들의 손과 발이 됐던 손영미 ‘평화의우리집’ 소장은 총구같은 카메라 렌즈에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칼춤’을 춘 결과였다.

총선을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윤 의원에 대한 ‘종북몰이’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공세는 큰 화력을 갖지 못했고, 윤 의원은 보란듯이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오히려 윤 의원을 고꾸라뜨린 것은 일명 ‘도둑몰이’였다. 상당수 의혹은 근거도 불분명했고 실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여론에 끼치는 영향력은 컸다. 당사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에 귀를 기울여주는 곳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보수진영에선 ‘윤미향 사태’ 전개가 무척 흥미로웠나 보다. ‘도둑몰이’라는 수법은 보수정부인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조합을 노골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전 보수진영에서 민주노총은 ‘이적단체’로 불렸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올해도 어김없이 노조 간부를 향한 종북공세가 이어졌다. 국가정보원이 나서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노조 간부들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위력은 이전 만큼 크지 않았다. 의혹 제기는 허술했고, 조직적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중심부로 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노조를 뒤흔든 건 새로운 ‘도둑몰이’ 공세였다. 전국에 수없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건설노조가 첫 타깃이었다. 건설업계는 공사 현황에 따라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특이한 고용 구조를 가진 만큼, 건설노조의 활동도 다른 일반적인 노조 활동과는 달랐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다른 노조에서 활동하는 조합원들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복잡한 구조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일방적으로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몰아가면 여론은 쉽게 따라갔다. 건설노조 간부들 역시 한순간에 파렴치한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참혹한 건설현장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던 건설노조 간부들은 애꿎게도 줄줄이 옥살이를 하게 됐고, 그 중 강원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 간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산화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지원에 힘을 얻은 건설사들은 오히려 더 우쭐해졌고, 그만큼 노조는 현장에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노동개혁’으로 포장했다.

‘건폭몰이’에 한 번 재미를 본 정부는 다음으로 양대노총을 직접 겨냥했다. 노조 회계의 투명성을 대뜸 문제 삼으면서 시행령을 통해 회계장부 공개(회계 공시)를 강제한 것이다. 양대노총은 현행법대로 결산 결과와 회계 감사 자료를 조합원에게 공개해왔기 때문에, 정부의 요구를 수용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회계장부를 외부에 공개할 것을 계속 압박하면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게 있나 보다’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전 정부에선 전혀 없었던 공세였다. 

결국 양대노총은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물론 사용자 등에 노조의 재정 상황이 공개되면 노조의 자주성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처음엔 반발했지만,  현실을 감안해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것이었다. 민주노총 이정희 정책실장은 “회계 공시를 이미 조합원들에게 하고 있는데,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떳떳하지 못해서 안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공세를 계속할 것”이라며 “일반 국민들의 경우, 정권이 그렇게 떠들어대면 저희가 아무리 ‘사실은 이렇다’고 얘기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억울함을 아무리 호소해도 정권 차원에서 ‘도둑몰이’를 하는 순간 여론의 반전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건 ‘윤미향 사태’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의연은 오보 대응에 몸살을 앓았다. 이후 정정보도가 수차례 이뤄졌지만, 한 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현재 노조가 겪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정부는 이제 이른바 ‘노조 전임비’까지 걸고 넘어지고 있다. 지난 2일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운영, 사용자의 노조에 대한 운영비 원조를 감독한 결과 사업장 62곳 중 39곳에서 위법사항이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노조 활동을 유급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2009년 노사정 합의로 도입됐다. 노사는 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시간면제 시간·인원을 정할 수 있는데, 한도를 초과해 급여를 지급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

노동부의 발표 이후 “노조에 제네시스 제공”, “1만8000시간 일 않고 돈 받은 공기업” 등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가 쏟아졌다. 건설노조를 겨냥해 ‘건폭몰이’를 할 때와 마찬가지 양상이다. 하지만 문제가 될 법한 일부 사례가 실제 있을지는 몰라도, 적발된 사례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정부가 억지로 부당노동행위로 몰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동부의 발표로 인해 마치 노조가 사용자에게 소위 ‘삥’을 뜯는 조직처럼 비춰지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양대노총은 단체협약 체결 경위, 노조 활동 현황,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는 확인하지 않은 채 기계적인 근로시간면제한도 초과 급부만 따지는 편파적인 방식으로 감독이 진행됐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정부가 먼저 낙인을 찍은 터라 과연 여론이 노조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노조의 힘이 약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나아가 서민층에 쏠린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다치고 죽기 전에,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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