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이뤄진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재정지출을 더 늘리면 물가 때문에 서민들이 죽는다”며 건전재정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는 현 정권이 재정지출 증가 없이 경제 위기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인식이다. 지금 같은 고물가 상황에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고물가 사태는 고유가와 고환율 같은 외적 변수가 영향을 미친 결과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린다고 물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정부 스스로가 대규모 부자 감세로 세수 기반을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지난해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소득세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 부자 감세를 추진한 현 정권은 혼인 증여재산 공제(1억 한도) 등을 신설하며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기세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올해 7월 ‘2023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향후 5년 동안 3조 1,000억 원의 세수 감소 효과를 노린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결과 9월까지 국세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조 원 가까이 감소했다. 건전재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재정지출의 증가가 아니라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 기조 때문이다.
게다가 현 정권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특례보금자리론 등을 밀어붙여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을 제공한 원죄가 있다. 가계부채 증가로 가처분소득을 줄여놓고 부동산 가격과 물가 상승까지 부추긴 셈인데,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이제 와서 물가를 잡겠다며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다.
결국 물가 인상을 최대한 막으면서 현재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부자 증세를 통해 세수를 늘리고, 재정지출을 확대해 민중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방법뿐이다. 현 정권의 부자 감세와 건전재정 강조는 결국 민중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부자들의 배만 불리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