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1천400명이 사망한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팔레스타인인 1만여 명이 사망했다. 그중 거의 7천명이 아이들과 여성이다. 그런데도 두 달째에 접어든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전은 끝날 기미가 없다. 유엔 활동가 89명을 잃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지적하듯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 이뤄지고 있다. 전쟁 범죄는 매일 자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기미만 보여도 뭇매를 맞는다. 그것이 과연 10월 7일의 공격과 그에 대한 보복을 둘러싼 의견의 차이 때문일까? 무조건 이스라엘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주류 제도권과 팔레스타인 해방의 정당성을 이해한 대중의 격렬한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트루스아웃의 기사를 축약해서 소개한다.
미국 대학과 직장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보복성 대량 학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후 커리어, 평판, 사생활에서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10월 7일 하마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상당수가 민간인인 1천400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복수에 혈안이 된 이스라엘은 극단적인 살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3천700명 이상의 아이들을 포함해 9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을 가자지구 공습으로 살해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집단 학살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많은 사람이 괴롭힘, 비방, 블랙리스트 등재, 해고 등 사회의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학자와 학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연대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며 이런 처사에 항의했고, 주요 인사들의 집단 공개서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담론적 투쟁은 정치의 최고위층까지 파장을 가져와 국가 지도자와 상원 등이 비난과 검열로 맞싸우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배층의 선전에 넘어가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동안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길고 느린 학살이 자행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새로운 만행을 저지를 때마다 제도권의 선전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고, 내러티브를 둘러싼 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한 시위를 둘러싸고도 당국과의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지배적이던 ‘현실 부정’이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이스라엘 비판을 둘러싼 투쟁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미국에서 절대 할 수 없는 유일한 얘기이자 마지막 금기였지만, 현재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이제는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2024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을 자주 볼 수 있고,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지칭하는 것이 어느 정도 주류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스라엘 옹호자들은 싸움 없이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편집진이 마지막 순간에 철회해 가디언에 실리지 못하고 n+1에 실린 딜런 사바의 글이 지적했듯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 전혀 과장하지 않고 ‘매카시즘적’이라 일컬을 만한 심각한 보복을 당한다. 역사학자이자 n+1 편집국장인 찰스 피터슨도 이에 동의하며 ‘적어도 50년 만에 정치적 이유로 인한 해고가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나 매카시즘 시대로 돌아가야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해고 물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10월 7일 이후 법률 단체 ‘팔레스타인 리걸’에 접수된 탄압 신고가 200건이 넘는다.
600개 이상의 법률 단체와 전문가는 정치 지도자와 기관장에게 이런 탄압을 막을 조치를 즉각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예로 든 탄압에는 SNS 및 뉴스의 검열, 개인 정보 누출, 온라인 및 캠퍼스에서의 차별과 괴롭힘, 해고와 강등, 조직 활동 금지 또는 방해, 비자 및 이민과 관련된 인종차별적 법안 발의, 감시, 법집행기관의 조사, 노골적인 폭력 등이 있다.
학계와 대학 캠퍼스의 반응
10월 7일 이후 대학 당국과 여러 학계 지도자가 수많은 성명을 발표해 맥락을 뺀 채 하마스의 공격을 비난했다.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정당하지 않다고 치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이런 암묵적인 지지는 논란을 일으키지도, 공격이나 반발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학생 단체와 다양한 좌파 성향의 캠퍼스 내 목소리도 성명을 냈다.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뉴욕대 법대생이자 (현재 해체된) 학생 변호사 협회의 전 회장이었던 라이나 워크맨이 학장의 비난, 온라인에서의 괴롭힘, 우익 언론의 공격을 받은 사례는 널리 보도됐다. 이번 전쟁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는 성명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법률회사 ‘윈스턴 앤 스트로우’는 그에게 한 취업 제안도 취소해버렸다. 다른 법률회사들도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한 학생들을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한 기업법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내 반유대주의 학생들을 고용하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버드대 학생들도 이스라엘에게 책임을 묻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에 빠졌다. 이들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개인 정보가 누출됐고 괴롭힘을 당했다. 월가 경영진은 하버드대에 고용 금지를 위해 서명 학생의 명단을 요구했고, 보수단체가 동원한 전광판 트럭이 ‘하버드의 대표적인 반유대인주의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서명 학생의 사진과 이름을 보여주며 학교 앞 번화가인 하버드 광장을 돌았다. 전광판 트럭은 콜롬비아대에서도 등장해 같은 일을 벌였다.
코넬대의 러셀 릭퍼드 흑인학 교수는 ‘하마스가 인종분리 장벽을 뚫은 것은 저항의 상징처럼 보였다’고 했다가 하마스의 공격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며 엄청난 분노를 사고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콜롬비아대의 조렙 마사드 교수도 10월 7일 공격을 모호하게 표현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 요구와 살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보스턴대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수업 거부가 이뤄지자 학교 당국이 교수들에게 암묵적인 함구령을 내려 학문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생각한 교수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교수회의에서 학생들을 두둔했다가 학교 당국에 수차례 불려가 심문을 당한 교수의 일을 잘 알고 있고 노조도 없는 교수들이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사립대학들이 자기 학생과 교수를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힘센 기부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월가 억만장자 케네스 그리핀은 하버드에 6,500억 원을 기부하며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옹호하라’고 당부했고, 하버드대, 팬실베니아대, 뉴욕대, 스탠퍼드대, 코넬대 등에서는 기부자들이 학교 측이 하마스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즉시 발표하지 않았다거나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에게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없애거나 기부를 철회했다.
UCLA의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딜런 쿠프쉬는 학생들이 수업거부, 세미나, 촛불 집회, 수천 명이 모이는 LA 시위 참여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행사가 성공적일수록 돌아오는 비난과 육체적 폭행 정도는 심해진다고 했다. 학교 당국은 폭행을 목격해도 못 본 체하고, 폭행이나 개인 컴퓨터 등의 파손을 신고해도 학교 당국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학교 신문은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 공고 요청은 거절하고 이스라엘 지지 집회만 공고한다.
미 상원까지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에 대한 탄압에 나섰다. 대규모 수업 거부가 있은지 하루 만에 상원이 ‘반이스라엘, 친하마스’ 학생 단체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만장일치였다.
공립 대학교 교수진의 반발
캘리포니아 교수협회(CFA) 노조원인 블랑카 미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불문학과 교수는 노조원 모두가 합세해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교수진, 특히 노조 가입 교수진의 공동행동은 지배권의 서술과 학문적 자유의 제한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교수협의회에서 300여 명이 캘리포니아대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학교 당국이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한 것을 철회하고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반대할 것을 촉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컬럼비아대와 바너드대 교수진의 공개서한, 3천500여 명의 흑인 교수 활동가, 예술가, 학생과 100여 개의 단체가 서명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흑인’ 성명서, 페미니즘, 동성애, 트랜스 연구 학자들의 공동서한, 유대인 작가들의 공동성명 등 다른 학자와 단체도 조직적으로 노력했다.
공립대학은 사립대학이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과 교수진을 탄압하는 주된 이유가 서로 다르다. 공립대학은 투쟁의 한 수단으로 소송을 이용하는 시오니스트 유대 단체와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주립대는 작년에 학교 관리자들이 친이스라엘 발언을 억압하거나 유대인 학생 단체를 교내 행사에서 배제하려 했다는 두 학생과 합의로 소송을 해결했다. 1심 재판관은 근거 없다고 소송을 기각했지만, 두 학생이 항고하자 학교 측이 ‘시오니즘은 유대인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라는 성명 발표, 시오니즘적 관점을 담은 교내 벽화 제작 등을 해 주기로 하고 합의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제도권의 몸부림은 보이콧, 투자철회 및 제재 운동(BDS)의 확산 이후 더 거세졌다. BDS 운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전쟁 범죄를 비판하며 이스라엘 상품 불매, 이스라엘과의 경제 및 문화 교류 금지, 투자 금지, 국제적 제재 등을 통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전쟁 범죄를 종식하려는 국제적인 운동으로 2005년 등장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돼 이스라엘이 2017년부터 이 운동 가담자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로비력을 지닌 미국에서도 BDS 운동과 이를 지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가 50개 중 35개에 이른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목소리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로버트 홀든 뉴욕 시의원(민주당)은 한 NGO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가자지구 민간인 학살 반대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수백만 달러의 지원금을 모두 박탈하려고 하는 등 사소한 형태의 억압이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예외주의가 깨지고 있다
이스라엘 로비의 막강한 영향력과 그들이 가진 미국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 인프라 덕분에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을 옹호한 사람에 대해 학계를 넘어선 굉장한 범위의 보복이 이뤄지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SNS에서 지난 몇 주 동안 직장에서 해고나 다른 불이익을 당한 피해자의 계정을 추적한 사람들에 따르면 그 직업 범위는 지하철 기사부터 스포츠 작가, 탤런트 에이전트, 기술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피해 범위는 주요 콘퍼런스, 출판물, 언론 인터뷰 취소부터 폭탄 테러 위협까지 넓었으며,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를 가리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이를 공유한 사람들에 대한 보복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인의 기본 인권을 옹호하고 인종차별 체제의 종식을 촉구하며 수천 명을 넘어 끝없이 이뤄지는 보복 살인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사람들이 이런 극심한 보복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분노할 일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담론의 공간이 여전히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스라엘이 생산하고 미국이 증폭시킨 수십 년간의 효과적인 선전 때문에 올바른 변화를 위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길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최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세를 반전시키는 일은 아직 요원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 및 외교 당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옹호하며 재무장하는 데 막대한 전략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미국 주류 언론이 이들을 감시하기는커녕 이들의 애완견처럼 굴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은 팔레스타인만 예외적으로 취급하는 문화를 지적하지 않는다. 미국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비난을 철저하게 금기로 만든 이데올로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합의가 마침내 깨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완전히 와해될 때까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부터 미국 캠퍼스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인과 그 지지자는 어떤 수사보다 훨씬 더 전면적이고, 어떤 캠퍼스 소동보다 훨씬 더 중대한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더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기 전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이 중단되기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