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를 어떻게 노래하면 좋을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면 될까. 이 질문은 두 가지 질문을 포함한다. 지금 한국의 음악계는 사회 문제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지, 사회 문제를 표현한 음악은 그 문제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예술은 사회 문제만 소재로 삼거나 주제로 다루지 않는다. 개인의 사적인 내면을 이야기하고,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며, 꿈과 좌절을 표현한다. 일상의 경험, 자연과의 만남, 인간관계도 작품이 된다. 국가권력에 의해 오랫동안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해온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문제보다 사회문제가 아닌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훨씬 많고,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예술가의 시선이 현실을 향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예술이 사적인 고백이어도 좋지만, 인간의 본질과 공동체의 문제를 기록하고 증언하고 질문하며 성찰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부여는 예술이 오래도록 지켜온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심규선 - Sister
한국의 예술 장르 가운데 음악이 그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해왔는지 다시 이야기 할 필요가 있을까. 민중가요만이 아니다. 민중가요의 시대가 지나간 뒤에는 록, 재즈, 포크, 힙합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음악인들이 인권과 평등을 노래하고 연대해왔다. 그렇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오래된 문제와 새롭게 출현하는 문제들을 충분히 노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음악 역시 상품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비판하고 성찰하는 노래는 잘 팔리지 않고, 노래로 비판하고 연대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 이주 노동자의 차별, 빈곤 노인의 고통, HIV 바이러스 감염인의 삶에 대한 책과 다큐멘터리는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노래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의 음반 [#HUMANKIND]이 반가운 이유는 이 같은 현실에서 기인한다. 2010년 데뷔한 팝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은 그동안 빼어난 가창력을 선보이며 꾸준히 활동해왔지만, 사회문제를 노래하거나 연대하는 뮤지션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9일 발표한 정규음반 [#HUMANKIND]에는 다른 심규선이 등장한다. “우린 끝없이 뺏고 가지려 하네 / 범람한 강들과 타버린 땅 폐허와 연기뿐인데 / 우리 사람의 본성은 과연 선한가 혹은 악한가”라는 타이틀곡 ‘Question’의 노랫말을 들으면 이 음반이 심규선의 음반이 맞나 싶을 정도다.
심규선 ⓒ심규선 인스타스램
심규선은 인류라는 음반 제목에 맞게, 인간이 마주하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존재와 문명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직시한다. “우리 앞의 세계- 공멸하는 / 우리 앞의 세계- 구원이 없는 / 우리 앞의 세계- 끝을 향하는”(‘우리 앞의 세계’) 노래는 지금 다른 장르의 예술작품들이 계속 표현했지만, 대중음악계에서는 좀처럼 형상화하지 않은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현실 인식이다. 게다가 “우리는 거부하리 편리한 눈속임들을 / 거대한 자본들과 그들이 펼치는 논리를 / 소리쳐 분노하리 우리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 그 마지막 세대임을 알고 있기에”(‘Last Generation’)라는 노랫말에 이르면 심규선은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한 저항의 주체로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시와 음악을 자기 목소리로 삼은 한 표현가가 조금 더 거대하고 넓은 의미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실험”에서 심규선은 과감하고 용기 있게 할 이야기를 다하는 음악인으로 책임을 다한다.
비판하고 싸우는 이야기가 음반의 전부는 아니다. “그때 너의 안에서 터져 오른 외침은 이 노래는 너의 무대야 그 누가 아니라, 너의 삶이야 그 누가 아니라“(‘Humble’), ”내가 여기 있을게 너를 안고 있을게 / 서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의지하니까“(‘Care’), ”그래 우린 이렇게 서로의 손을 꼭 잡았네 / 놓치지 않을게 나를 필요로 할 때 / 잊지 말아, 너는 곧 나고 나는 곧 너야“(‘Sister’) 같은 노래들은 공감과 연민, 응원과 결합으로 채웠다. 다들 외롭고 힘들고 지친 세상,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좀처럼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세상에서 심규선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 일어나 모질게 다시 가야 해“(‘순례자’)라며 결의를 다진다. 위로와 공감이 대세가 되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일이 최선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심규선은 위로하고 공감할 뿐 아니라 생의 의지를 다지고 문제의 원인을 분명히 하는 노래를 들려준다. 이처럼 정확한 인식과 의미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문 음악 작품집으로서 심규선의 음반 [#HUMANKIND]는 값지다.
심규선 - Question
그럼에도 이 음반이 음악적으로 충분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심규선이 충만한 보컬로 간절하고 화려하게 노래하고, 드럼/베이스/기타/신시사이저/피아노/백그라운드 보컬뿐만 아니라 플루트/클라리넷/혼/트럼펫/바이올린/비올라/첼로에 미디 프로그래밍까지 활용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노래들로 음반을 채웠는데, 그 음악 언어가 그동안 심규선이 선보였던 팝 발라드의 언어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음반의 수록곡들이 얼마나 공들여 만든 음악인지는 한 두 곡만 들어보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심규선의 이야기는 매순간 곡진하게 다가오지만, 음악을 듣는 이들이 사유하고 고민할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은 웰 메이드 음악이다. 노래 속의 모든 이야기와 감정 발산은 심규선이 다해버리는 음악 앞에서 듣는 사람은 감상밖에 할 일이 없다. 감성 넘치는 음악을 들으며 안타까움은 커질 수 있지만, 예술은 감상 너머의 체험으로 나아가야 한다. 질문을 남겨야 한다. 그러려면 작품 안에 공백이 있거나 낯선 만남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 익숙한 음악언어를 총결집한 음악, 관객보다 먼저 울어버리는 음악은 새로운 감각과 질문을 만나게 하지 못한다.
물론 익숙한 발라드의 언어로 비판과 성찰을 노래할 때 대중적으로 더 효과적인 울림을 선사할 수 있지만, 새로운 감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음악은 관습적 반응 이상을 끌어내지 못한다. 지금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나 카타르시스가 아니다. 전복과 도전이다. 이 음반이 의미 있는 발언과 성심을 다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2023년을 대표하는 음반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의미 있는 발언을 음악으로 잘 표현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