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의 삶을 조명한 2인극, 연극 ‘튜링머신’

연극 '튜링머신' ⓒ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삶을 변화시킨 컴퓨터의 개념을 창시한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게 되면 낯섦은 순식간에 호기심으로 옮겨가게 된다. 바로 이 앨런 튜링의 삶을 그린 연극 한 편이 공연되고 있다.

지난달, 국내 초연 소식을 알린 연극 ‘튜링머신’이 11월 3일(금)부터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무대에 올랐다. 4면의 객석으로 둘러싸인 입체적인 무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를 연상시키는 높은 층고의 무대 장치와 신유청 연출의 감각이 더해져 2인극의 매력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다. 연극 ‘튜링머신’은 프랑스에서 작가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브누아 솔레스(Benoit Solès)의 작품으로, 프랑스 연극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꼽히는 몰리에르 어워즈에서 주요 4개 부문(최우수 작가, 최우수 희극인, 최우수 남우주연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면의 무대, 노출된 오브제, 2인극의 묘미가 더해진 이야기


무대에 등장한 앨런 튜링은 어눌하기도 하고 때론 명석하기도 하고 때론 엉뚱하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점에서 전하는 1인칭 전개는 복잡한 시대배경과 파란만장했던 삶에서 앨런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가 된다. 그의 이야기는 1952년 1월 자신의 집에 든 도둑을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수사관 미카엘 로스는 앨런의 이상한 말과 행동을 수상히 여기고 그의 과거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연극 '튜링머신' ⓒ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첫사랑 크리스토퍼의 사진, 체스판, 운동화, 통신기, 사과. 그의 인생의 주요 사건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은 전시관의 전시물처럼 무대에 놓여 있다. 이 오브제들은 장면의 전환없이 앨런 의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는 주요 열쇠가 된다. 아직 컴퓨터라는 유형의 사물이 존재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앨런 튜링이 설계했던 생각하는 기계는 무대 가운데 높은 천장으로 연장된 거대한 기계 모양의 상징물로 표현된다.

독일군의 복잡한 암호체계 애니그마를 풀어낸 천재 수학자, ‘기계는 생각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쫓았던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튜링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 뒤에는 오랜 시간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만나게 된 콘티넨탈 호텔 서버인 아놀드 머레이와 깊은 관계를 갖게 되고 사건의 시작이 된 도난 사건에 아놀드가 연루된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앨런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결국 ‘동성애 금지법’이 존재했던 1952년 영국에서 외설 혐의로 기소되고 만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누군가의 용기일지도


세상을 변화시킨 이 천재 수학자의 업적은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의 업적보다 빛나는 순간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한 인간의 모습, 평가에 주눅들지 않는 학자의 신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담담히 밝히는 순간 얼굴에 번지는 평안한 미소가 조명을 받는 순간이다. 단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2인극이지만 한 배우가 서 너 명의 배역을 소화함으로써 이야기의 폭을 넓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 때문에 순간 순간 변하는 배역의 전환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것은 이 연극의 관람 포인트가 된다.

연극 '튜링머신' ⓒ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앨런 튜링은 1954년 41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극 역시 마지막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개념을 창시해 세계를 변화시킨 업적에도 불구하고 2013년 공식 복권이 되기 전까지 범죄자로 기록되었던 앨런 튜링. 한 인물을 조명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인물의 생애는 감동을 주고 인물의 행동은 역사를 창조한다. 이 작품이 상투적인 위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뻔하지 않고 의미있는 것은 ‘변화는 한 천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굽히지 않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진실을 끝까지 보여줘서가 아닐까 한다.

원 캐스트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서 앨런 튜링 역의 배우 고상호와 수사관, 미카엘 로스와 호텔의 서버 아놀드 머레이, 그의 라이벌 휴 알렉산더까지 네 가지 배역을 소화해 내는 배우 이승가 열연을 펼친다. 연극 ‘튜링머신’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11월 25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연극 ‘튜링머신’

공연장소 :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공연날짜 : 2023년 11월 3일(금) – 11월 25일(토)
공연시간 : 화 – 금 20시/토 15시, 19시/일 15시(단, 11월 12일(일) 18시 30분/ 11월 25일(토) 15시)
러닝타임 : 90분
관람연령 : 중학생 이상 관람가
원작 : 브누아 솔레스(Benoit Solès)
연출 : 신유청
제작진 : 총괄프로듀서 석재원/프로듀서 백소연/번역 박다솔/윤색∙조연출 김진숙/움직임 이소영/무대∙소품 최영은/조명 강지혜/음악∙음향 지미 세르/의상 박소영/분장 백지영/무대감독 최정환/상주 무대감독 박희승/포토그래퍼 이강물/그래픽디자인 이지현
출연진 : 고상호, 이승주
공연 예매 : 인터파크 티켓
공연문의 : 02-6954-0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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