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식당과 카페 내부 등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포기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그동안 일회용품 규제에 부담을 호소하던 소상공인들은 환영의 입장을 보이면서도,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9일 환경부에 따르면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투 등 주요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우선 일회용 종이컵은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식당, 카페와 같은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은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으나, 앞으로는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대신 환경부는 종이컵의 재활용률을 높이고, 자발적 참여 독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플라스틱 빨대에 대해서는 계도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비싸고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종이빨대 등 대체품 품질이 개선되고 가격이 안정될 수 있도록 기간을 좀 더 두겠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비닐봉투는 편의점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거의 쓰지 않고 생분해성 봉투, 종량제 봉투로 대체되고 있다며 단속보다는 대체품 사용 생활문화 정착에 주력하기로 했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는 지난해 1월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 추가한 것들로, 지난해 11월24일부터 적용됐으며 1년의 계도기간이 부여됐다.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오는 11월 24일 이후부터는 식당 내에서 종이컵을 사용하거나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제공하면 최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환경부가 계도기간 만료를 앞두고 스스로 철회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환경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이유로 내세웠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고물가·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규제로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건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과태료 부과보다는 (일회용품 줄이기를) 생활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임 차관은 "종이컵 사용 금지로 매장에선 다회용컵을 세척할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세척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부담이 늘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환경단체 "정부의 직무유기...소상공인, 혼란만 더 가중될 뿐"
환경부가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회용품 절감'은 윤석열 정부가 인수위원회 당시 밝힌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환경운동연합은 7일 성명서를 내고 "일회용컵 사용량이 2019년 7억7,311만개에서 2021년 약 10억2,388만개로 늘어났다"면서 "규제를 풀고 1회용품 남용을 권장하는 나라도 우리나라뿐"이라고 비판했다.
녹색연합 또한 같은 날 성명에서 "국민권익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는 1회용품 사용규제 강화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했다"면서 "종이컵이 연간 248억 개가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됐음에도 규제를 안 하겠다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지적했다.
환경부가 계도기간 중에 대안 없이 '규제 완화' 방침만 밝힌 것도 문제다. 환경부는 종이컵 규제를 철회하면서 종이컵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마련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플라스틱 빨대 또한 대체품 가격 안정을 위해 생산업계와 논의한다는 방침만 밝힌 채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환경연합은 "이번 지난 규제는 2021년 12월 31일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한 것으로,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서도 "그럼에도 이제와 소상공인의 부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소상공인을 핑계로 예정되어 있던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환경부에서도 강조하는 '자발적 참여를 통한 감축'도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환경부의 '자발적 협약 결과'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개인텀블러 및 다회용컵 사용 비율은 2018년 44.3%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는 93.9%까지 급증했다. 이는 2018년 8월부터 매장내 일회용컵 사용 규제가 적용된 영향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해석이다. 이에 대해 녹색연합은 "개인의 실천과 카페의 선택이라는 자율 감량보다 사용규제라는 제도가 일회용품 사용 저감에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규제 완화 방침이 갑작스럽게 발표된 만큼 일회용품 절감을 준비하던 현장에서 혼란도 우려된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와 환경부는 그간 계도기간 종료에 맞춰 권역별 설명회를 진행하며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대한 준비를 해 왔다. 서울시는 지난 8월만해도 환경부와 합동으로 계도기간 종료에 대비한 합동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환경연합은 7일 성명서에서 "무려 2년 전에 예정되어 있던 규제를 계속 계도기간으로 유예시키는 것은 정부의 제도시행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예정되어 있던 제도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1회용품 규제를 준비하는 소상공인은 오히려 제도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혼란만 더 가중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소상공인 "비용과 소비자 불만이 자영업자에만 집중...정부가 대안 마련해야"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완화에 소상공인들은 당장의 부담을 덜었다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7일 입장문에서 "소상공인도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시점에서 일회용품 규제는 필요 기반이 전혀 구축돼 있지 않아 소상공인의 애로가 컸다"면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일회용품, 특히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는 언젠가는 진행해야 할 과제다. 국제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진행되고 있으며 2~3년 안에 완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2~3년 안에는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2024년 말 마지막으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5차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자원한 상태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도 9일 국회에서 계도기간 연장 기한에 대해 "플라스틱 국제 협약이 2025년 논의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언젠가 진행될 일회용품 규제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계도기간을 연장된 상황인데 추가로 확보된 시간동안 친환경 제품의 품질이 개선되고,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 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이 일회용품 규제에 부담을 호소하는 이유는 비용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소상공인들에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소상공인에게 일회용품을 규제한다고 항의하는 소비자들이 없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 등 환경 조성에 대한 노력없이 모든 책임과 의무를 현장에서 감당하는 소상공인에게만 맡기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랜시간 계도기간 있음에도 준비 못 한 소상공인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걸 못할 상황이면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도 "제일 쉽게 규제할 수 있는 게 가맹점주니까 이런 식으로 시행된 게 아닌가 싶다"면서 "모두 환경보호에 대해 반대하는 건 아니니까 시스템을 개선해서 시행된다면 참여할 의사가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