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 1차회의에서 조경태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1.07. ⓒ뉴시스
국민의힘의 ‘서울 확장론’이 정국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특별시로 편입하자는 주장은 수도권 여론이 들썩이게 하는 것을 넘어 전국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총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실제 지역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국민의힘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작지 않아 보인다.
실체 없는 ‘서울 확장론’에 김포는 혼란, 전국 여론은 ‘싸늘’
서울 확장론의 시작은 김포였다. 경기도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특별법 주민투표를 행정안전부에 요청한 직후, 김포 지역 내에서 국민의힘은 ‘경기북부가 아닌 서울로 들어가자’는 주장을 펼쳤다.
홍철호 국민의힘 김포을당협위원장은 지난 9월 말 추석을 앞두고 ‘김포시→경기북도 나빠요, 김포시→서울특별시 좋아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지역에 내걸었다. 국민의힘 소속 김병수 김포시장도 김포시가 경기북부가 아닌 서울로 편입되는 게 합리적이라는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지역에 머물던 이슈가 정국 이슈로 부상한 건 불과 한 달 만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0월 30일 김포한강차량기지에서 열린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서 김포의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정해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김 대표가 지역 이슈를 중앙으로 끌고 왔지만, 실제로는 ‘친윤(친윤석열)’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이후 경기도 여론은 들썩였다. 서울에 인접한 경기 지역의 국민의힘 의원들뿐만 아니라 총선 출마 예정자들, 국민의힘 소속 기초단체장들까지 앞다퉈 ‘우리 지역도 서울로 편입시켜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김포를 넘어 경기 지역 곳곳에 ‘서울 편입’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울로 편입되면 호재가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감부터 시작해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국민의힘의 주장은 당장 실체가 없다는 것이 점점 확인됐다. 행정 개편이라는 게 한 순간에 결정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해득실을 따져보니 서울 편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오히려 쓰레기 매립지를 김포가 떠안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서울 편입까지 절차를 따져봐도 현실성이 크지 않았다. 당장 경기도와 서울시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경기도는 강하게 반발했고, 서울시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김포 주민들이 서울 편입을 원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객관화된 실체가 전혀 없었다. 김포시는 부랴부랴 이달 중 주민 1천명을 대상으로 서울 편입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홍철호 국민의힘 경기 김포을당협위원장이 지난 9월 말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포 지역에 내 건 현수막. ⓒ홍철호 페이스북
더 큰 문제는 전국 여론이 서울 확장론에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포의 서울 편입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인 55%가 ‘좋지 않게 본다’고 답했다. ‘좋게 본다’는 응답은 24%에 불과했고, 의견 유보는 21%였다.
엠브레인퍼블릭과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6~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르면 김포 등의 서울 편입 논의는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선거용 제안’이라는 응답이 과반인 68%에 달했다. 반면 ‘효과적인 도시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는 답은 19%에 그쳤다.
특히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선거용 제안’이라는 응답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차지했고, 특히 인천·경기는 74%, 서울은 70%에 달했다. 전국의 여론이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메가삽질’을 하고도 이슈 장악했다고 좋아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아직까지 수도권 선거를 낙관적으로 본다면 어이가 없는 것”이라고 적었다. 즉, 국민의힘의 서울 확장론 카드는 총선용으로선 실패작이라는 지적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지난 2022년 9월 26일 오전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울경 특별연합 잠정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2022.09.26. ⓒ뉴시스
수도권 외 지역에서 특히 반발, 국민의힘 안에서도 입장차
실제 국민의힘의 서울 확장론은 수도권 외 지역에서 특히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의힘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수도권 표심을 잡으려고 하다가, 수도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표심까지 오히려 잃고 있는 셈이다.
당장 국민의힘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민선 1·2기 김포시장을 역임한 유정복 인천시장을 비롯해 부산시장 출신 5선 중진 서병수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김태흠 충남도지사 등 전·현직 지자체장이 서울 확장론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을 불러온다는 우려에서였다. 국민의힘이 서울 확장론을 펼치면 펼칠 수록 서울이 아닌 지역에선 소외감이 들 수밖에 없다.
서울이라고 우호적인 것도 아니다. 서울 외곽 지역에서 총선을 준비해온 이승환 중랑을 당협위원장과 김재섭 도봉갑 당협위원장 역시 반기를 들었다. 교통 정체와 개발 제한 등 서울 외곽 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충도 경기 지역 주민들 만큼이나 크니 “서울부터 잘 챙기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제2의 대도시’로 꼽히는 부산의 여론이 심상치 않다. 지역 주민의 열망이 모여 지난 문재인 정부 때부터 부산과 울산, 경남이 초당적으로 협력해 추진하던 ‘부울경 메가시티(부울경 특별연합)’가 작년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 집권한 국민의힘의 반대로 좌초됐는데, 이제와서 국민의힘이 서울을 키우겠다고 두 팔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부울경 메가시티’ 걷어차놓고 갑자기 ‘메가 서울’ 한다는 국민의힘)
이는 수도권 집중 현상에 대응해 부울경에 초광역 도시권을 형성하자는 부울경 메가시티 취지와 완전히 배치되는 행보다. 게다가 이를 주도하는 인물이 울산과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조경태 의원이라는 점에서 지역 주민들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부울경 지역 시민단체인 ‘메가시티포럼’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부울경 메가시티는 걷어차고 서울 메가시티, 서울공화국으로 가려는 책동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무산시켰던 당사자인 국민의힘 부산시의원이 이제와서 다시 부울경 메가시티를 추진하자는 앞뒤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최근 악화된 지역 민심 탓으로 보인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지난 2월 부산시의회에서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부울경 메가시티 규약 폐지를 의결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당시 찬성표를 던진 시의원 중 한 명인 국민의힘 소속 강철호 시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부울경 메가시티 재추진으로 2030부산세계박람회 성공 개최를 견인하자”며 “시민 비판과 질책이 아무리 따갑더라도 부울경 메가시티 재추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부산 지역 시민단체인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는 강 시의원을 향해 사과를 요구하면서 “국민의힘이 들고 나온 ‘김포 서울 편입’에 대한 입장부터 밝히라”고 압박했다.
이런 상황이 수도권 밖에서 총선을 준비하던 야당에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권택흥 더불어민주당 대구 달서구갑 지역위원장은 지역에 ‘서울 메가시티보다 지역(대구) 발전이 우선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며 국민의힘에 맞섰다. 권 위원장은 “김포시 서울 편입은 대국민 사기극이다. 대구 윤재옥 의원은 밀어부치고, 나머지 11명의 (대구 지역 국민의힘) 국회의원 누구도 말을 안 한다”며 “여당발 메가시티 논의에 대구만 빠졌다. 서울 사는 대구 국회의원이라 그럴까”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국민의힘은 대구도 아닌 서울 발전에만 관심이 있다고 몰아붙인 것이다.
권택흥 더불어민주당 대구 달서구갑 지역위원장이 지역에 내건 현수막. ⓒ권택흥 페이스북
수세로 몰리고 있는 국민의힘, 승부수 아닌 무리수만 계속
이처럼 서울 확장론에 역풍이 불 조짐이 보이자, 국민의힘은 다른 지역도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구상까지 느닷없이 내비쳤다. 김포의 서울 편입 등 추진을 논의할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조경태 의원은 지난 7일 첫 회의 모두발언에서 “서울이 기폭제가 돼서 서울·부산·광주 ‘3축 메가시티’, 더 나아가서 대전과 대구를 잇는 ‘초광역 메가시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왜 충청은 빠졌냐’는 등의 또 다른 논란을 오히려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부울경 메가시티를 엎은 마당에 서울 확장론에 대해서조차 심도 깊은 논의가 아직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지역으로까지 판을 벌리면서 진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까지 반년 가까이 남은 만큼, 결국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김포의 서울 편입 이슈를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론으로 추진한다고 했지만, 지금으로선 당론이 하나로 모이기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 하나 추진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오히려 총선에서 역풍이 불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홍 시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김포 서울 편입론은 반짝 특수나 노리는 떴다방을 연상시킨다”며 “내년 3월쯤 그런 ‘떴다방’을 추진했으면 모르되, 총선까지 6개월이나 남았는데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떴다방’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이 서울 확장론에 대한 입장을 ‘반대’로 분명히 정리한 것도 국민의힘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향해 정치 공세를 펼치다가 갑자기 수세로 몰리게 된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애초 민주당도 상대적으로 강세인 수도권 여론의 눈치를 보며 서울 확장론을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민주당에 김포의 서울 편입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해왔다.
처음엔 애매한 입장을 보이던 민주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이 마치 시비를 걸듯이 자꾸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강요한다”며 “접경지역에 붙어 있는 수도라고 하는 게 전 세계에 있느냐”라고 비판했다. 김포가 서울로 편입되면 서울이 접경지역이 되는 것은 안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김포의 서울 편입을 반대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런 해괴한, 그야말로 포퓰리즘적인 주장을 하면서 답변을 강요하더니 기후에너지부 신설 같은 정말로 우리 국가와 국민들의 삶에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반응이 없다”며 “국정을 책임져야 될 정부·여당이 민생이나 정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민생과 정책을 망치는 정쟁만 자꾸 유발하고 있다”고 국민의힘을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