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인임의 일터안녕]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한 세 가지 조건

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이 급성중독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한 것과 관련 경남 창원시 의창구 소재 두성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진은 두성산업 정문. 2022.02.18. ⓒ뉴시스

지난 3일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소사건이었던 두성산업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그리고 사회봉사 320시간이 내려졌다. 1심 결과였다. 법인에는 2천만 원의 벌금도 물렸다. 트리클로로메탄(노출시 간 손상을 유발하며 작업환경측정 대상 물질임)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 제대로 된 환기장치를 하지 않아 16명의 노동자가 중독된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두성산업에서는 유성케미칼이라는 납품업체로부터 세척제의 MSDS(물질안전보건자료, 제품에 포함된 개별물질의 독성정보를 제공하는 자료이며 반드시 사업장에 게시해야 함)를 제공받았는데 트리클로로메탄이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환기장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짜 MSDS를 제공한 유성케미컬 대표에게는 2년의 실형이 선고됐고 법인에는 3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두성산업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었고 유성케미칼에게는 화학물질관리법이 적용되었다. 법원이 두성산업에 유죄를 선고한 이유는 “이 사건 이전부터 관리 대상 화학물질을 취급했음에도 국소 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판결은 비록 집행유예라는 처벌 아닌 처벌이라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상식적인 안전보건 관리’라는 너무나 당연한 의무가 소홀했던 문제에 대한 판단이 있었다는데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위험성 평가’가 가지는 의미이다. 법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지금까지 위험성 평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위험성 평가를 하게 되면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루어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할 것’ 조항에 대한 면책이 이루어지면서 중요해졌다. 특히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에서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제시하였고 여기에서 위험성 평가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였다. 위험성 평가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고 중소사업장에서는 준비가 안 되어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의 안전보건 관리’라고 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실제로 발생했던 중대재해 사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상식적이지 않은 업무환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법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의미를 갖게 된 위험성 평가


두성산업의 경우를 보자. 트리클로로메탄, 이 녀석만이 문제였을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의 수는 약 4만5천 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고용노동부가 고시(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 기준, 고용노동부고 시 제2020-48호)를 통해 노출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물질의 수는 731종이다. 이 중에서 작업환경측정 대상은 고작 100여 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그냥 대체로 노출되면 안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물론 독성의 경중이 있을 테지만 가능하면 노출되지 않는 방향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학교급식 노동자에게 집단적으로 폐암을 일으킨 ‘조리흄’의 원인물질 중에서도 작업환경측정 대상이 아닌 물질들이 많고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암을 일으키는 ‘다이옥신’도 작업환경측정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미 알려진 ‘상식적으로 위험한 물질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위험성 평가와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이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폐암에 확진된 학교급식 노동자들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열린 급식 종사자 폐암 검진결과당사자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학교 급식 조리식의 열악한 환경해 증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3.14 ⓒ민중의소리

두 번째 조건은 정부의 정보인프라 구축이다. 정부는 어떤 작업을 할 때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물질이 어떤 독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구축하고 누구나 쉽게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 정보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꾸준한 추적관찰을 해야 한다. 노동자와 안전보건 관리자, 관리감독자가 알고 싶은 위험을 모두 알려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 이런 시스템은 구축되어 있지 않다. 위험성 평가를 기업에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공하는 ‘안전보건기술지침(KOSHA Guide)’은 10년이 넘은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종류도 1천3백여 종에 불과하다.

세 번째 조건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위험성 평가가 근로감독이나 현장 노동자의 진정, 고소, 고발에 의해 확인될 경우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계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사업주가 ‘상식적인 안전보건 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면책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개선이 진행됐다면 사실상 중대재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중대해 재감축 로드맵에서 제시하듯이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대한민국에서 자리 잡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시민사회에서도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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