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정일 칼럼] “강도를 보호하라”

지난 8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 세력의 생존 방식입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원고지 21매 안팎의 광복절 경축사에는 ‘자유민주주의’란 단어가 7차례 나온다. ‘자유’와 ‘민주’를 합성한 이 단어는 영어 ‘Liberal-democracy’의 번역어처럼 보이지만, 정작 영미 정치학 사전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발명품인 이 단어의 용례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변했고 즐겨 쓰는 진영도 달랐다. 1950년대부터 간간이 쓰이기 시작한 이 단어는 북한이 스스로를 ‘진보적 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라고 자칭했기 때문에, 그것과 구별하기 위해 남한에서 만든 말이다. 이 용어 속의 ‘자유’는 다당제나 사상의 자유 등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공산주의가 지향하는 경제적 균등이나 계획경제와는 다른 시장경제에 대한 옹호가 표명되어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의 다른 표현이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의미했다.”(임대식,「자유민주주의」,『역사비평』편집위원회 엮음,역사용어 바로쓰기,2006,역사비평사,144쪽)

그러나 이승만이 통치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에 이 용어의 본색인 ‘자본주의’ 지향은 살짝 가려지고 이 용어의 표면인 ‘반공·반북’만 부각되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도 저 용어의 거죽으로 자신의 군사반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가 경제부흥을 위해 도입한 계획 경제는 전혀 자유민주주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삼선개헌과 유신체제 구축을 통해 독재체제가 강화되면서 정치적·시민적 ‘자유민주주의 회복’은 반독재민주화 진영의 강령이 되었고, 박정희는 자유민주주의를 사대주의적이고 서구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이 시기에 이 용어를 독점한 것은 반독재민주화 진영이었다. 이 용어가 다시 보수·우파의 전유물이 된 것은 김대중(1998)·노무현(2003)이 연이어 집권하고 남북 화해가 진전되면서다.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우파는 이 용어를 ‘반공·반북’의 동의어로 되살려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08.15. ⓒ뉴시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를 “반국가세력”과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비방했으니,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는 정치적·시민적 자유도 민주주의도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저 경축사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반공·반북의 동의어로 사용했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시장경제’와 ‘시장경제’의 동의어라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각기 1회씩 나온다).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 차례 막말을 쏟아낸 윤 대통령은 열흘 후인 8월 2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1주년 성과보고회 및 2기 출범식 인사말에서 또다시 무개념 발언을 더했다. 그는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면서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고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고 그런다면 그 새는 날 수 없고 떨어지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 즉, ‘자유시장경제’와 ‘시장경제’는 ‘오른쪽’ 날개만으로 날고 있는 것일까.

‘Liberal-democracy’의 번역어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발명품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로 포장된 강도의 이념


2008년 미국에서 금융붕괴가 일어났을 때, 미국 정부는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구제금을 부실 경영으로 금융붕괴의 원인을 제공한 금융사에 퍼부었다. 개인의 파산을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공적 자원으로 막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에 반발한 공화당 상원의원 짐 버닝이 말한 것처럼 ‘사회주의 방식’이다. 이와 같은 반시장적 조처는 윤 대통령의 말씀처럼 ‘사기적’이며, 왼쪽 날갯짓으로 뒤로 간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거대 기업에 공적 기금을 출연하거나 특혜(정책)를 베푸는 것은 특별나지 않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업계가 위태롭던 2020년 4월부터 2022년 4월 5일까지 2년간, 정부는 국내 항공사에 특별고용유지지원금 총 5195억원을 직·간접으로 지원했다(대한항공은 이 가운데 55% 수준인 2832억원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사회주의적 조처로 위기를 모면하고는 한다.

자본주의자들은 공적 자금을 대기업에 안겨주는 사회주의적 조처는 비상시에만 일어나는 예외인 것처럼 말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는 항상 개인보다 기업을 편든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창의가 시장경제를 발전시킨다고 하지만, 실제로 믿고 실행하는 것은 낙수효과(trickle-down)다. 슬라보예 지젝이 간파한 것처럼 낙수효과란 “재분배가 빈자를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부자를 빈곤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반개입주의적이기는커녕 실제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관하여 아주 정확한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빈자가 부유해지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그들을 직접 돕는 것은 역효과를 내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의 역동적이며 생산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요구되는 종류의 개입은 부자가 더 부유하게 되도록 돕는 그런 것”이며, “다른 방식을 취한다면 그저 국가가 진정한 부와 창조자를 희생시키면서 궁핍한 자에게 자금을 분배하는 경우가 될 뿐이다.”(『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2010,32~33쪽)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를 가져왔던 금융사의 최고경영자들은 천문학적인 퇴직금과 상여금을 받았다. 공적 자금을 지원받았던 한국의 회장님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사재를 내놓았다는 사람은 전무하거나 드물다.

누군가가 ‘강도를 보호하라!’고 외치고 다닌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안다. 정신병자이거나,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그도 강도의 일원이다. 한국식 조어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로 포장된 강도의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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