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안전 통로’로 가자지구 북부를 빠져나온 팔레스타인 가족

13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북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남쪽으로 대피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북부 가자지구 주민을 상대로 24시간 내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최후통첩을 냈음에도 피난길에 나선 주민은 수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이스라엘은 지난달 13일 가자지구 주민 총 230만명에게 가자지구의 ‘허리’에 해당하는 와디 가자 이남으로 이동하라고 했으나 하마스의 본거지로 알려진 가자시티를 비롯한 가자 북부에 수십만 명이 남았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북부에 남은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테러리스트라며  전면적인 지상전과 공습을 이어가고 있어, 며칠전부터 '안전통로'로 개방된 가자를 남북으로 잇는 살라 알딘 고속도로를 통해 하루에 수만 명의 피난민이 빠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가자지구의 실향민 수가 약 160만 명에 달했다. 이중 약 74만8000명이 가자지구 전역 151개의 유엔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지만 여기서도 사망자와 부상자는 계속 나오고 있다. 10월 7일 이후 현재까지 UN 보호소에서 66명의 난민이 사망하고, 558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사망자 중 최소 20명, 부상자 중 최소 400명은 가자지구 남부에서 나왔다. 이렇듯 가자지구 남부도 안전하지 않지만 북부에 남아 있을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남부로 향하는 한 팔레스타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미들이스트아이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Israel-Palestine war: One family's treacherous journey through Gaza's 'safe corridor'

가자시티 사브라 지역에서 아내, 그리고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푸아드 마젠 무두크는 지난 몇 주 동안 큰 충격을 받았다. 110만 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 북부에 24시간 만에 ‘대피’하라는 이스라엘의 명령 이후 가자지구 남부로 이동할 시간이 매우 촉박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폭격이 계속됐다.

집 밖을 나가지 못했던 나날을 떠올리며 무두크는 그는 말했다. “눈앞에서 지옥을 봤다. 쉴 새 없이 공습이 이어졌다. 전쟁이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 벌써 33일이 지났다. 33일 동안 학살이 계속 됐다는 게 상상이 되는가?” 무두크는 폭격으로 집이 완전히 무너져 전쟁 둘째 주부터 가족과 함께 같은 동네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한 다른 두 형제도 이사를 와 100㎥짜리 아파트에 20명 넘게 살게 됐다고 한다. 무두크는 밤만 되면 이스라엘이 쉼 없이 폭격한다고 했다. 그러면 한 살배기 딸의 심장도 쉼 없이 쿵쾅거린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에 1,300명 이상이 사망한 전례 없는 공격을 감행한 이후 가자지구에서 무자비한 폭격으로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인 1만800명 이상을 살해했다. 끊임없는 폭격으로 이미 심각했던 식량, 물, 에너지 부족 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상 침공으로 남부와 북부가 단절되면서 전쟁 이전부터 17년 동안 봉쇄됐던 가자의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무두크는 아침마다 이집 저집, 이 슈퍼 저 슈퍼, 이 빵집 저 빵집을 돌아다니며 음식과 물을 구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의 빵집이 폭격을 당해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물을 구하려면 재빨리 이곳저곳을 다녀야 한다. 그래야 하루에 10리터짜리 연료통 두 개를 겨우 채울 수 있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 다른 형을 위해서도 물을 찾아야 한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지구 북부의 모든 빵집이 공급 부족으로 수요일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가자는 유령 도시가 됐다. 거리를 걷는 것도 위험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던 거리와 익숙한 랜드마크는 거의 찾아볼 수도, 알아볼 수도 없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무두크는 알시파 병원에 대피하는 것조차 안전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들은 가자지구의 모든 곳을 계속 폭격하고 있다”.

지난 9일 이스라엘은 가자시티와 그 주변에서 가자지구 남부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매일 4시간 동안 민간인 이동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무두크는 뉴스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아내가 여전히 떠나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방금 알라시드 거리에 버려진 남성, 여성, 아이들의 시신 영상을 봤다. 우리도 그들처럼 죽고 잊혀지게 될까봐 무섭다”며 그의 아내 말라크가 이스라엘의 명령대로 가자지구 북부에서 피난을 떠났다가 공격을 받아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두크의 두 형제도 떠나기를 거부했다. 무두크는 “장애가 있는 형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형은 혼자라도 빨리 도망가서 살아남으라며 거절했다. 형은 우리가 살아남을 운명이면 어떻게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무두크의 어머니도 남아 있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그런 치욕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인권단체와 국제기구들은 그것이 또 한 번의 낙바 사태를 가져올 뿐이라며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을 북부에서 남부로 강제 추방한 이스라엘을 거듭 비난했다. ‘재앙’을 뜻하는 낙바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위해 팔레스타인인을 자신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과 집에서 쫓아내 약 75만 명이 외국으로 흩어진 인종 말살 사건을 일컫는다.

하지만 무두크는 아이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해 결국 가슴 아픈 탈출을 결심했다. 1세에서 5세 사이의 세 자녀를 둔 아버지에게 남는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말했다. “내가 떠난 유일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공습이나 공포, 굶주림으로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아이들을 속이고 공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그것이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공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여정

지난 7일 아침, 무두크와 말라크, 그리고 세 자녀가 위험천만한 길인 돌라 거리를 나섰다. 많은 짐을 들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이 챙긴 건 아이들이 갈아입을 옷과 기저귀, 분유뿐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낡은 길을 따라 바퀴가 삐걱거리는 당나귀 수레에 올라탔다. 가자시티의 주요 교차로인 쿠웨이트 광장에 도달했다. 거기부터는 걸어야 했다.

대피하는 길은 피난민으로 붐볐다. 보급품은 구하기 어려웠다. 공습에 대한 두려움도 늘 있었다. 매 순간이 긴박했다. 속도를 늦추거나 쉴 틈이 없었다. 임박한 위험을 감지한 그는 한 손으로는 한 살배기 딸을 안은 아내의 손을 꼭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71세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안전 통로’를 걸었다. “내가 죽어서 시신이 여기 방치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러면 아무도 우리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은 우리를 죽이고 세상이 우리와 우리의 투쟁을 모르기를 바란다”고 무두크가 말했다.

7㎞의 길은 수많은 공포스러운 광경으로 가득했다. 건물 잔해와 폐허 사이로 시체가 길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때 팔레스타인인의 삶과 미래의 상징이었던 당나귀와 말수레는 이제 시신을 실어 나르는 암울한 운반 수단이 됐다. 불발탄도 곳곳에 있었다.

그런 광경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말라크는 어지럼증에 시달리며 지쳐갔다. 무두크는 그런 그녀의 얼굴에 물을 뿌려주며 계속 움직이라며 아내를 다독였다. 무두크가 떨쳐버릴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세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안은 여자와 그녀의 남편이 있었는데, 여자가 쓰러지자 이스라엘군이 서툰 아랍어로 ‘카비비 움직여!’를 연발했다. 빨리, 더 빨리 가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총의 위협에 여자를 두고 도망쳤다. 무두크는 아내도 같은 일을 당할까봐 두려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이스라엘군을 볼 때마다 순종의 제스처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의 입술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이스라엘군을 총을 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은 두려움과 침묵 속에서 걸었다. 부모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광경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무두크는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땅에 있는 것은 절대로 보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죽은 사람과 동물의 모습이 박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처참한 심정을 전했다. 중얼거리는 사람들의 나지막한 기도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기자도 카메라도 보이지 않아 고립감은 더욱 심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이야기는 사라질 것이다”. 비통한 무두크의 말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7㎞의 ‘안전 통로’를 통과했다. 다행히 무두크 가족은 부레이 난민 수용소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해서야 기자가 보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수많은 탱크와 군대도 보였다. 무두크 가족은 이스라엘이 그은 분계선 아래에 있는 가자지구의 중부 도시 데이르 알-발라로 가기로 했다. 가다가 수천 번 죽을 수도 있는 길에서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느낄 새도 없었다. 무두크 가족은 물과 음식을 받고 다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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