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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근로시간제도 개편 시도, 실패 인정하고 중단해야

13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 발표한 ‘주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반대가 거세자 한발 물러서 여론 수렴 후 보완하겠다고 한 결과다. 6,03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근 6개월간 주 52시간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업주는 14.5%에 불과했고, 업무량이 갑자기 늘었을 때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고 답한 경우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28.2%와 33.0%뿐이었다. 애초 주 52시간제는 획일적·경직적 제도라며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어긋난다는 정부 주장과 달랐다. 하지만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입법 추진 시 이러한 부분을 세밀하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잘못을 시인했지만 여전히 근로시간 연장은 포기할 수 없다는 속내다.

정부는 개편 대상 업종·직종으로 제조업과 건설업, 설치·정비·생산직, 보건·의료직, 연구·공학·기술직 등을 꼽았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것이 필요하다면 현행 제도로 충분하다. 이미 2018년 노사정 합의로 탄력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했고, 선택근로시간제를 도입하면 3개월 단위로 주 52시간 초과도 가능하다. 이번 발표를 두고 양대노총은 즉각 반대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은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고 노동자와 국민들을 호도하는 노동시간 개악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고 했으며, 한국노총도 ‘답정너’ 설문에 시간과 국민 혈세가 낭비됐다며 비공개로 진행된 조사 과정을 문제 삼았다. 이런 상황에 노사정 공감대를 통해서 근로 시간 개편 업종·직종 등 구체적 방안을 정하겠다고 덧붙인 발표는 참 뻔뻔하다. 애초에 노사정 공감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런 방안을 제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 나라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49시간이나 많았다. 주당 실근로시간이 48시간이 넘는 근로자의 비중은 2022년 기준 17.5%로, 유럽연합(EU)의 장시간 근로자(주 49시간 이상) 비율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장시간 노동을 제도화하는 것이 아니다. 주 52시간을 넘어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일부 업종의 개편이라는 말로 호도할 것이 아니라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쉬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다. 더 오래 일할 자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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