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남북 군사합의를 되돌리려는 우리 정부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1월 북한 무인기 도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9‧19 군사합의에 대한 효력정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 이후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청문회에서부터 여러 차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이후 여당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국민의힘 국가안보위원회는 지난 10월18일 성명을 통해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용이하게 해준 9‧19 군사합의의 효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ICBM 발사, 드론 도발 등 북한의 도발 시 이를 계기로 동 합의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북한의 추가 도발시 완전 폐기하는 수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공개된 AP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한다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의미”라며 “강화된 대비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가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의 촉발점이 될 우려가 눈앞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지상과 해상, 공중에 완충구역을 두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것이 골자다. 남북 사이에 우발적 충돌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 실제로 그 이후 국지적 군사 충돌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에서 합의 파기의 명분을 찾으려 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그동안 군 당국은 정찰 능력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를 주장해 왔는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갑자기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한 취약함이 문제 된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것이 9‧19 군사합의 때문이라는 주장도 황당하다. 뭐든 막 갖다 붙여서 이전 정부의 합의를 뒤집고 싶어 하는 속내만 드러낼 뿐이다.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우리가 나서서 정지시키고 나아가서 파기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 국익에 부합할 리 없다. 합의 파기의 정치적, 외교적 부담을 자청해서 떠안는 꼴이며, 군사적 긴장의 빌미를 제공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정도는 분명하고 자칫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정세가 복잡하고 위태로울수록 오히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은 낮으면 낮을수록 유익하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있던 군사합의를 나서서 파기하겠다는 발상은 이런 상식에 반하는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