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의 위험천만한 ‘정당해산’ 발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3.09.27. ⓒ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위헌정당심판’(정당해산)을 언급했다. 매우 위험천만한 말이다. 더구나 박근혜 국정농단, 양승태 사법농단 등 역사에 남을 만한 중대한 헌법 위반 사안까지 수사했던 사람으로서 더욱 그렇다.

물론 한 장관이 뜬금없이 ‘위헌정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그동안 실행에 옮기거나 추진하려는 각종 탄핵안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한 장관은 이날 “민주당은 판사를 탄핵했고, 행안부 장관을 탄핵했고,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한다고 했고, 검사 세 명을 탄핵한다고 했고, 저에 대해 탄핵한다고 했다가 발 뺐고, 오늘은 검찰총장 탄핵한다고 했다가 분위기 안 좋으니 말을 바꿨다”며 “이제 하루에 한 명씩 탄핵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헌법이 가진 민주주의 파괴를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 국회 측에 탄핵소추가 있고, 정부 측에 위헌정당심판 청구가 있다. 만약 법무부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대해 위헌정당심판을 청구하면 어떨 거 같으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원석 총장 탄핵이나 저에 대한 탄핵보다 과연 민주당에 대한 위헌정당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더 낮다고 보느냐.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한 장관이 실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저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감정적’인 반응의 일환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탄핵과 정당해산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장관의 말은 탄핵을 남발하면 정당을 해산시키겠다는 취지다. 정당해산 제도가 탄핵에 대항하는 제도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인데, 이는 탄핵 제도와 정당해산 제도의 도입 취지를 간과한 것이다. 두 제도는 각각 존재하는 이유가 엄연히 다르다.

위헌정당심판, 즉 정당해산 제도의 존립 근거는 다수파로부터 소수정당을 보호하는 데 있다. 정당해산 제도는 4.19 혁명 이후 민주주의 근간의 정치체제를 구축했던 1960년 헌법 개정 때 도입됐다. 당시 헌법개정안 기초위원장이던 정헌주 의원은 이 제도에 대해 “정당의 자유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이승만 정부가 핵심 정적으로 삼았던 조봉암 선생의 진보당을 1958년 강제해산한 사례를 두고 “우리가 경험한 바와 같이 진보당 사건처럼 정부의 일방적인 해산 처분에 의해 (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 사태를 예방하고자 이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헌법 정당해산 제도의 기초라고 언급되는 유럽평의회 산하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베니스위원회)는 정당해산 제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정당을 결성할 자유를 포함한 결사의 자유는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의 시금석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베니스위원회는 또한 정당해산 제도의 최적은 “집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10여 년 전 박근혜 정부에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위헌정당심판을 청구해 당을 해산시킨 전례가 있는데, 이는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훼손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세계 헌법재판 기관들이 모인 권위 있는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한국 헌법재판소에 결정문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해당 사건을 주시했다. 유엔인권이사회도 당시 한국의 정당해산 사례를 두고 “한국 정부와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합진보당 해산은 심각한 조치로 결사의 권리, 표현의 자유, 공적 활동에 참여할 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이 사건에 우려를 표명했다.

따라서 한 장관의 말은 정당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섬뜩한 말로 다가올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활동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15일 MBC 라디오에서 “한 장관이 했던 얘기는 마치 독재를 언급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며 “게다가 다수당을 해산하겠다는 언급을 했다는 건 금도를 넘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고, 매우 심각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이 정당해산 제도와 동등한 가치로 취급하는 탄핵 제도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다. 정당해산 제도가 정당을 보호하는 취지에 입각해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을 실질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반면, 탄핵 제도는 이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그 목적이 달성된다. 선거나 수사로 입법부를 견제하는 것처럼 탄핵 제도는 국민을 대리하는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는 수단이다. 법률을 위반하면 수사받고 처벌받는 것처럼, 헌법을 위반하면 탄핵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김 의원은 “(탄핵과 정당해산은) 동일 선상에서 놓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절도를 한 사람과 살인을 한 사람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한 장관이 ‘판사 탄핵’을 마치 민주당의 무리한 행위처럼 언급한 것은 자기 모순에 해당하기도 한다. 한 장관은 2018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판사 탄핵 추진의 핵심 근거가 됐던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 수사 책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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