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간 이어진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 광풍이 휩쓸고 간 건설현장. 건설사들은 건설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고용을 거부했고, 수많은 조합원들이 일자리를 잃어갔다. 실직 상태로 수개월이 흐르자, 조합원 중 일부는 노조를 탈퇴했다. 일부는 노조 조끼를 벗은 뒤에야 일반 도급팀으로 겨우 현장에 들어가는 실정이다.
건설노조가 밀려난 자리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통한 일반 도급팀으로 채워졌다. ‘현장의 감시자’ 역할을 해왔던 건설노조가 사라지면서 부실시공도 활개를 치고 있다. 정부는 ‘건설현장의 정상화’라고 부르지만, 현장 상황은 정반대인 셈이다. 한 건설노동자는 “건설노동자의 처우와 안전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끔찍한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 도급팀으로 들어간 현장은 부실시공 천지 속도전 공사에 철근 삐져나오고, 곳곳엔 균열도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은 이러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난 9~10월,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조합원 32명은 해당 현장에 일반 도급팀으로 들어갔다. 도저히 노조팀으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설노조가 건설사 협회들과 맺은 단협상 일당보다 적게는 3만원, 많게는 6만원가량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투입된 현장에서는 각종 불법이 횡행하고 있었다. 근로계약서상 노무비와 실제 받는 임금에 차이가 있었고, 임금의 절반은 전문건설업체에서 나머지 절반은 오야지에게 받는 등 불법 하도급도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노조팀으로 일하면 전문건설업체와 건설노동자가 직접 계약을 맺고 임금도 직접 받기 때문에 불법 하도급이 이뤄지지 않지만, 일반 도급팀은 여전히 불법 하도급이 만연했던 것이다.
이에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불법 하도급 신고센터에 신고하기 위해 매일 같이 전화를 걸었지만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보름 만에 겨우 연결된 담당자는 ‘신고는 전화로 하지 말고 증거를 모아 우편으로 보내면 심사하겠다’는 무성의한 답변만 내놨다. 센터에 직접 전화했던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유병권 의정부지대장은 민중의소리와 만나 “수도권 공사현장의 불법 하도급 신고센터에서 직원 2명이 일한다고 하더라”라며 “이게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 일을 하겠다는 건가.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두세달을 꾹 참고 일했던 조합원들은 지난 8일 결국 자신들이 ‘노조팀’임을 밝혀야 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도 됐지만, 도저히 참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발견된 부실시공 정황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들이 9월 20일부터 11월 10일까지 지하층 건설 현장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보면, 콘크리트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아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해야 할 철근이 콘크리트 밖으로 드러나 있거나 제 위치에 세우지 않은 철근을 억지로 휘어 콘크리트 안으로 집어넣은 곳도 있었다. 천장에는 균열이 생겨 물이 뚝뚝 떨어졌고 대형 거푸집(알폼)은 콘크리트 무게를 견디다 못해 터진 채 방치돼 있는 모습도 확인된다. 이 아파트는 내년 연말 완공 예정으로 총 636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조합원들이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찍은 부실시공 정황들. 왼쪽 사진을 보면 거푸집이 터져 있고, 오른쪽 사진에선 철근이 노출돼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올해로 25년 차 형틀 목수이자 철근공으로 일하고 있는 임이태 씨는 “아파트는 벽이 기둥 역할을 해야 한다. 그 벽이 지하층에서 시작돼 하중을 견디는 것”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공사를 하면 벽이 건물 하중을 지탱해 주지 못하고, 벽을 이루고 있는 콘크리트가 깨지면서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 아파트가 36층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지하가 저렇게 공사 됐으니 아무리 보수를 하더라도 충분한 하중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거푸집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철근 양옆에 거푸집을 대고 콘크리트 타설을 한 뒤 거푸집을 뜯어내는데, 거푸집을 만들 때부터 콘크리트를 부어도 벌어지지 않도록 제대로 마감을 해야 하는데 대충하고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건설사들이 이윤을 내기 위해 불법 하도급으로 미숙련공인 이주노동자를 대거 투입하고, 속도전으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당으로 임금을 받는 노조팀과 달리 일반 도급팀은 물량으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안전이나 시공 품질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무조건 빨리빨리 공사를 마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비로소 ‘노조팀’으로 일하게 된 조합원들은 부실시공 실태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조합원들은 16일 의정부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하도급 묵인이 부실시공을 만들었다”며 의정부시에 해당 공사 현장의 부실시공 및 불법 하도급에 대한 지도 단속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원청 관계자는 “도면과 다르게 시공될 경우 감리 과정에서 다 수정 조치를 한다”며 “부실시공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조합원들은 기자회견 이후 시 관계자를 찾아가 항의 면담을 했지만, 시 관계자는 “종합건설사에 대한 불법 하도급 단속은 현행법상 시에서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부실시공과 관련해서는 “불시에 나가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답답한 답변을 듣고 있던 조합원들은 부실시공으로 보이는 현장 사진을 들어 보이며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소리쳤다.
노조 조끼 입고 일하기 힘든 조합원들 현장은 빠르게 무법천지가 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가 16일 경기도 의정부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 현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35년째 철근공으로 일하고 있는 김시원 씨도 5월 이후 노조팀이 아닌 일반 도급팀으로 일하고 있다. 김 씨 역시 노조팀으로 일할 때보다 적은 돈을 받고 있다.
김 씨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이제는 노조팀이 고용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가도 거의 만나주지 않고 있다”며 전문건설업체들 사이 조합원 채용을 금지하는 지침이 있는 듯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일반 도급팀에서 일하다 보면 부실시공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라며 “시방서를 보면 철근이 교차되는 매 지점에 결속을 하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30%밖에 안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건설업체에서 나온) 오야지는 건설노동자들에게 ‘검침은 내가 알아서 맡을 테니까 대충대충 하라’고 말한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제대로 결속하든지 말든지 ‘빨리빨리 하라’고만 한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노조팀으로 일할 때는 임금이나 휴식 시간 등 여러 권리들이 보장됐지만, 노조팀이 아닌 일반 건설노동자로 일하게 되면 아무것도 없다. 쉽게 말해, 오야지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임금이 적다고 하면 오지 말라는 식이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라며 “조합원들도 속이 뒤집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와 부조리한 관행들에 목소리를 내왔던 조합원들도 크게 위축됐다. 한 건설노조 관계자는 “건폭몰이 후 건설현장이 위험해지고 불안정해졌다고 인지를 하고 있지만, 노조팀으로 고용되지 않다 보니 구체적인 사례들이 모이지 못하고 있고 조합원들도 노출되기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