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그리고 친재벌 경제단체에서 상속세 완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전경련이 5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상속세 부담 완화를 주문한 데 이어 6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손경식 회장이 “경쟁국보다 불리한 조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상공회의소도 2023년 조세제도 개선과제를 건의하면서 “높은 상속세율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도 이에 호응하려는 모양새다. 추경호 부총리는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제일 높은 국가이고, 38개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며 “상속세 체제를 한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발언했다. 보수 언론에서도 일제히 “약탈적 상속세를 손 볼 때가 됐다”며 장단을 맞춘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부터 사실이 아니다. 추 장관 등의 주장은 명목세율만 놓고 따진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 문제는 상속세 실효세율(상속재산에서 비과세 재산·장례비·각종 공제를 제외한 과세표준 대비 결정세액)인데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상속세 실효세율은 28.6%로, OECD 회원국의 평균 상속세율과 별 차이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소득세와의 연관성이다. 상속세가 ‘불완전한 소득세를 보완하는 세금’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공정한 과정을 거쳐 소득세를 적절히 걷었다면 상속세를 손보는 것은 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스웨덴 등 일부 유럽 복지국가들이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거나 없앨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는 소득세 자체가 매우 불투명하다. 주식 양도 차액에 대한 과세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도 한참 불완전하다. 자산소득의 공정과세에 대한 국민적 믿음이 약한 상황에서 상속세마저 완화한다면 부의 대물림을 막는 마지막 수단마저 스스로 없애는 격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소득세와 상속증여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고작 6.8%로 OECD 평균 9%에 한참 못 미친다. 또 소득세와 상속증여세가 총조세에서 차지하는 비중(22.8%)도 OECD 평균(24.2%)보다 낮다. 높은 명목 상속세율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소득세를 제대로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실상은 쏙 빼놓고 상속세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재벌들과 부자들의 배를 불릴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공정한 경쟁에 빈부격차가 나날이 심해지는 지금, 상속세 완화는 절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