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일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3.11.02 ⓒ뉴시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이고 국회의원이 100명이 넘는 거대정당이다. 비록 민주당이 과반이고 야권이 절대다수이긴 하나 100석으로도 국회 일정은 상당히 좌우할 수 있다. 야당은 법안을 처리하거나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하려면 상임위와 본회의 등에서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하고, 시일도 상당히 소요된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까지 상시대기 중이니, 무엇을 되게 할 수는 없어도 무엇을 안 되게 하기엔 충분한 힘이라 하겠다. 이동관 탄핵안을 폐기하기 위해 어차피 거부권 행사가 유력한 노란봉투법 필리버스터를 포기하는 ‘지략’을 발휘한 것도 상징적인 장면이다.
비극은 국민의힘이 여당이란 점이다. 여당은 정부와 함께 무언가를 해내 지지율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의석을 늘리고, 나아가 재집권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이 대통령 임기 거의 1/3을, 그것도 가장 중요한 집권 초를 야당이 무엇을 못 하도록 하는 것에 허송세월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을 수가 없다. 착시가 생겨서 그렇지, 1년 반 동안 지지율 30%대에서 오르내린다면 국정동력은 바닥난 셈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국민의힘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병폐는 분명하다. 이념몰이, 전 정부 탓의 국정기조와 여론이 싸늘한데도 박수나 치고 있는 당정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누구는 이것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비유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가장 명확한 평가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였다. 애써 부인하던 수도권 위기론의 실체가 확인되자 뒤늦게 국민의힘은 난리가 났고, 인요한 혁신위가 들어섰다. 그러므로 혁신위의 과제는 편향적 국정기조와 수직적 당정관계, 이 두 가지의 전환이다.
그러나 혁신위는 엉뚱하게 험지 출마를 꺼냈다. 이는 곧 윤핵관과 영남중진을 험지로 내몰고, 따뜻한 양지에 용산(과 서초동) 출신을 꽂으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다. 당과 혁신위는 급속히 험지와 양지를 둘러싼 싸움판이 됐다. 험지든 양지든 당내에서 알아서 할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전국 대부분을 험지로 만든 당사자는 윤 대통령이다. 결국 혁신위 사태의 원인은 인요한의 무지이거나 용산의 오더, 또는 둘 모두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보수도 동의할 수 없었던 윤석열 국정의 케이스로 홍범도 흉상 이전과 해병대 채상병 및 박정훈 대령 사건을 들었다. 국민들로서는 부자감세와 긴축재정도 치명적이다. 노동시간 연장 추진은 젊은층과 비정규·미조직 노동약자층에서 불만을 자아내고 있다. 진보, 보수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는 국정 리스트에 R&D 예산 대폭 삭감과 KBS 프로그램과 진행자에 대한 날벼락 폐지·하차가 최근 추가됐다. 경기도 몇 곳 제외하고 전국민 가슴에 불을 지르는 ‘메가서울’도 대통령 최측근의 작품이라니 빼놓아선 안 되겠다.
인요한 위원장은 국민 목소리를 듣겠다고, 당을 도와달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그 시간에도 국정은 계속 폭주하고 있다. 대통령도 혁신위도 험지를 양지로 만드는 것은 단념한 듯 보인다. 험지는 갈수록 늘고, 양지는 더욱 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