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대통령 거부권 저지! 실질임금 하락 대책 마련 촉구! 우체국 단협파기-물량축소 저지! 쿠팡투쟁 승리! 택배노조, 11.20 하루 전면 파업 전국택배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20 ⓒ민중의소리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민 대다수가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0일 나왔다.
특히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국민도 과반인 여론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지난 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천13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CATI)를 실시한 결과,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노조법 2조 개정’에 대해 응답자의 대다수인 77.4%가 ‘필요했다’고 답했다. 반면 ‘필요하지 않았다’는 14.4%에 불과했고, 모름 또는 무응답은 8.1%였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에 대해서도 ‘필요했다’(69.4%)는 응답이 ‘필요하지 않았다’(22.1%)는 응답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모름 또는 무응답은 8.5%였다.
노조법 2조 개정안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하는 권리를 보장하고, 노조법 3조 개정안은 파업 노동자에게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좁게는 노조법 3조 개정안을, 넓게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노란봉투법’이라고 부른다.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교섭권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원청의 이익 창출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청간 임금과 근로조건 등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하청 노동자는 현행 법적 한계로 인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이 파업 등을 하더라도 회사로부터 이른바 ‘손배 폭탄’을 맞기 일쑤였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오랜 사회적 요구 끝에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통과되기에 이른 배경이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도 형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원청회사와 하청회사의 임금 및 근로조건 등에 격차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대다수인 87.3%가 ‘격차가 있다’고 답했다. ‘격차가 없다’는 응답은 8%에 그쳤다. ‘원청과 하청과의 관계에서 부당한 대우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대다수인 81.3%가 ‘부당하다’고 답했다. ‘부당하지 않다’는 13.6%에 그쳤다.
또한 ‘노조법 2조 개정이 원·하청간 임금 및 근로조건 등의 격차를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과반인 68.2%가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반면, ‘도움이 안 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25.4%에 불과했다.
이 같은 노조법 2·3조 개정과 관련한 긍정적인 여론은 모든 연령·지역·성별, 그리고 모든 고용형태와 정치적 이념 성향에서 부정적 여론보다 높았다.
이러다보니 윤 대통령의 노조법 2·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높았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과반인 63.4%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적절하다’는 응답은 28.6%에 그쳤다.
여기서 특이점은 진보층과 중도층에선 반대 여론이 각각 85.3%, 63.7%로 높은 반면, 보수층에선 찬성 여론이 57.5%로 더 많았다는 것이다. 보수층은 노조법 2·3조 개정에는 찬성하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는 반대하지 않는 모순된 입장을 보였다.
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통과 후 첫 여론조사...국민 공감대 형성 확인 ⓒ뉴시스
민주노총 이정희 정책실장은 여론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노조법이 개정된 이후 처음으로 진행한 대국민 여론조사”라며 “여론조사 참여자는 60대 이상이 30% 정도 되고, 자영업자나 학생, 무직도 30% 정도 포함된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노조법 개정 여론이 높긴 하지만 일반 국민도 과연 그럴까 했을 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저희도 놀랄 정도로 노조법 개정 찬성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 반대 의견이 압도적 많았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 윤택근 위원장 직무대행은 “노조법 2·3조 문제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과 같은 노동계만의 숙원사업이 아니다.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 그리고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모든 일꾼들의 숙원사업이었다”며 “그런데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문턱도 넘기 전에 이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국민을 겁박하고 고용노동부 장관, 경제단체는 모두 한 목소리로 ‘파업 만능주의’라며 국민을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윤 직무대행은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노조법 2·3조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대통령 거부권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해주고 있다”며 “이미 우리는 수차례 토론과 연구를 통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국민과 노동자 모두를 살리는 길이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법임이 수차례 확인됐다. 더이상 국민을 기망하고 우롱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열리는 28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정부와 여당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상태다.
이에 맞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반발도 거세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노조법 2·3조, 방송법 쟁취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대회’를 개최했다. 방송법 역시 노조법 2·3조 개정안과 함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이다. 대표적인 간접고용 노동자인 택배노동자들이 결성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이날 하루 총파업을 단행했다. 민주노총은 이후 매일 저녁 촛불집회도 열 방침이다. 또한 다가오는 주말에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14일부터 노숙 농성도 벌이고 있다.
이 정책실장은 “이런데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