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가 각종 비위 의혹이 드러난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 검사를 직무 배제하고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조치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20일 이 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 수사 차원에서 경기 용인시 골프장, 강원 춘천시 리조트의 예약·출입·결제 내역 등 관련 자료를 압수수색했다. 동시에 이 검사에 대한 입건 조치도 했다. 이 검사는 처가에서 운영하는 용인 골프장을 이용해 현직 검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리조트 식사 접대를 받은 의혹, 자녀 학교 배정과 관련한 위장전입 의혹, 대마 흡입으로 입건됐던 처남 사건 불송치 및 무혐의 처분 관여 의혹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그동안 검찰 조직 내 구조적인 비위나 수뇌부와 밀착된 검사 비위 문제에 관해 대충 무마하거나, 오히려 노골적으로 비호하면서 외부의 문제 제기에 대항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과 마찬가지로 ‘윤 사단 특수라인’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이번 수사 착수가 더욱 이례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 차장검사는 2019년 8월 서울동부지검에서 ‘유재수 감찰’ 관련 사건을 맡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을 기소했고, 2020년에는 수원지검에서 ‘김학의 출국금지’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를 포착해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기소하는 등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하명 의혹을 받던 각종 사건 수사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이 검사는 2021년 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 주도로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대구로 좌천되는 나름의 고초를 겪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자격으로 해당 인사를 포함한 검찰 인사 문제를 놓고 법무부와 대치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검사는 윤 대통령 취임 후 다시 요직에서 주요 정치적 수사를 담당해왔다. 자기 사람은 어떻게든 챙기면서 끌고 가려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 입장에서 이 검사는 아픈 손가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맥락들을 고려하면 이 검사에 대한 수사가 검찰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긴 쉽지 않다.
검찰이 처한 복잡한 상황
이 검사가 받는 혐의는 지난달 말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으로부터 처음 제기된 것이다.
당시 신봉수 수원지검장은 “감찰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것으로 안다”며 해당 의혹들을 에둘러 반박했다. 오히려 김 의원의 문제 제기를 두고, 국감장에서 하기엔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역공을 펴기까지 했다.
국감에서 보여진 신 지검장의 태도에 비춰본다면, 검찰의 수사 착수는 적어도 외형상 완전한 태도 변화다. 과연 어떤 변수들이 작용한 것일까?
우선 국감 당시 최초 의혹 제기와 검찰 수사 착수 시점 사이에 나온 검사 탄핵 이슈가 있다. 이정섭 검사는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검사 4명 중 한 명이다. 탄핵소추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들 중 법률 위반 정황이 가장 뚜렷하고 비교적 입증이 쉬워 보이는 케이스다.
따라서 실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서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가 진행됐을 때 검찰이 어디까지 이 검사를 보호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검찰로선 기존 관성대로 막무가내로 이 검사 혐의를 묻어주는 데 있어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직 내부적으로도 무리하게 이 검사를 감싸다가 구성원들의 불만 또는 불신 여론이 자칫 윤 대통령으로까지 향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검찰로선 이 검사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헌재 심판대에 오르기 전에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해 외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정치적 공세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올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민중의소리
특히 이 검사가 검찰이 주력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겨냥 핵심 사건 수사 책임자라는 점은 검찰로선 상당히 부정적인 요인이다. 애당초 이 검사가 윤 대통령 라인이라는 점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의 공정성과 관련한 외부 공격의 주요 근거였는데, 여기에 더해 이 검사에게 개인 비위 의혹까지 덧씌워진다면 수사 공정성 논란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검찰은 이 사건 수사를 시작한지 1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해둔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하고, 그 이후 기소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검사에 대한 직무배제와 수사는 내부적으로는 이 대표 겨냥 수사를 진척시키지 못한 데 대한 문책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나아가 해당 수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사 책임자의 비위라는 치명적인 악재를 털어내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효과도 노려볼 수 있다.
가장 경미한 사건으로 수사 착수...결말은 지켜봐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 자체는 유의미하지만, 수사 결과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 의심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검찰의 초반 수사가 이 검사의 여러 의혹 중 비교적 가벼운 사안들에 집중돼있다는 점에 주목해봐야 한다.
이 검사가 받는 의혹은 크게 ▲처가 골프장 관련 청탁금지법 위반 ▲리조트 향응 관련 뇌물 및 청탁금지법 위반 ▲자녀 학교 관련 위장전입 ▲처남 대마 혐의 관련 직권남용 등이다. 이 중 가장 사안이 엄중하고, 검찰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사안은 처남 대마 흡입과 관련한 직권남용 의혹이다.
그런데 검찰은 가장 경미하고, 철저히 이 검사의 개인적인 비위로 정리할 수 있는 처가 골프장 관련 사안을 갖고 강제수사를 시작했다. 리조트 향응 의혹과 관련해서도 뇌물이 아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압수수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현재 적용한 혐의 외 추가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확대할 수 있을지, 최종적으로 공소 범위가 어디까지가 될지가 중요하다.
참여연대는 21일 논평을 내 “고질적인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 우려를 불식하려면 제기된 의혹 중 이른바 ‘리조트 향응’ 의혹은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타당하다. 공수처 이첩을 하지 않기 위해 검찰이 혐의를 축소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우려된다”며 “검찰은 골프장과 리조트 등을 압수수색하면서도 정작 의혹의 당사자인 이 검사 본인에 대해 핸드폰 압수수색 등 어떠한 강제수사를 진행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역시 전날 입장문을 내 “검찰이 ‘수사 쇼’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검찰은 이 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해 낱낱이 수사하기 바란다. 철저한 수사로 검찰이 유독 제식구에게만 약하다는 국민적 의구심을 떨쳐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