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슈링크플레이션 조사” 방침...‘반짝 행정’으로 그칠까

가이드라인보다 업계 계도...“앞으로도 규제할지 기준 밝혀야”

대형마트(자료사진) ⓒ뉴시스

정부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슈링크플레이션'과 관련해 실태 조사 후 대처 방안을 마련한다.

그동안 '꼼수 가격 인상'으로 지적되던 문제에 정부가 직접 나서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이후 이를 근절할 제도적 뒷받침이 없어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제기된다.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물가상승을 말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제품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용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인상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정부 주요 관료들이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일제히 비판 입장을 내놓으면서 이에 대한 제재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14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정직한 경영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공정위 등 관계 기관과 내용물 변경 시 고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제재를 예고했다.

이어 이틀 뒤인 16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슈링크플레이션을 "꼼수"라고 비판하면서 "기획재정부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결국 하루 뒤인 17일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정부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면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전방위로 기업들의 슈링크플레이션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실태조사는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에 대해 진행하고, 신고센터를 통한 제보도 접수한다. 공정위 등 관계기관은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실태조사 결과,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비자들에게 정보공개를 할 예정이다.

그동안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로 지적되던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정부가 행동을 취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향후 이를 근본적으로 막을 정책적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미 단위가격표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단위가격표시제는 상품의 가격을 일정 단위로 환산한 가격으로 표시하는 제도다. 대형마트에서 판매가격과 함께 표시된 'g당 가격'이 그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단위가격이 익숙하지 않아,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라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공정위에서는 시행령 개정이나 가이드라인 제시 등 제도적 정비보다 업계 계도와 협조로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제품의 양을 줄이는 등 단위 가격을 변경할 경우, 이를 가격표 등을 통해 알리는 방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은 그 방법이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슈링크플레이션의 제재 움직임이 일시적인 '보여주기 행정'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하는 데 있어 객관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거기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런 원칙과 기준이 없다"면서 "이렇게 제재를 하면 앞으로도 계속 규제를 할 건지 원칙과 기준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의 '꼼수 인상'은 과거에도 있었는데 앞두고 갑자기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총선을 앞두고 벌이는 일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식품업계들, "정부 방침 따를 것"이라면서도 "가격 압박에 또 압박" 부담


식품업계들은 정부의 슈링크플레이션 제재 방침에 따를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점검하고 방안을 내놓으면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그동안 정부가 식품·유통업계를 상대로 가한 가격인상 압박의 연장선으로 보고 부담감을 표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업들은 가격 인상이 어려운데 그런 것까지 잡는다고 하니 쉽지 않은 상황 같다"고 난감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해외에서는 용량을 줄이는 등 변동이 있으면 소비자에게 알리는 게 의무화돼 있는데 이런 글로벌 트렌드로 변화할 의무가 있으면 따라야 할 것"이라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압력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슈링크플레이션이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에 의한 부작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원부자재 가격이 인상이 됐지만, 정부 압박으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자 선택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제품의 개수를 줄이는 건 문제지만, 그것도 기업마다 입장이 있을 것"이라며 "가격을 못 올리니까 기업 입장에서는 방법 아닌 방법으로 선택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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