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주요 반도체 기업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이 가장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다. 실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대신하는 행태도 개선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린피스는 21일 공개한 ‘2023 공급망의 변화’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기후위기 대응 점수로 D+를 부여했다.
이번 평가 대상은 세계 주요 소비자 전자 브랜드에 납품하는 동아시아 대형 공급 기업 11곳이다. 각 기업의 지난해 기후위기 대응을 전년과 비교해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8위에 머물렀다. 세계 반도체 기업, 한국 주요 기업 중에서는 꼴찌다.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국 입신정밀과 미국 인텔이 C+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SK하이닉스와 대만 TSMC, 애플 아이폰을 조립하는 중국 페가트론이 C로 분류됐다. 삼성·LG디스플레이는 C-다. 애플의 최대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폭스콘은 삼성전자와 동률이고, 디스플레이 기업인 중국 BOE와 애플 협력사인 중국 고어텍이 F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기후위기 대응 관련 정보 제공을 평가하는 ‘투명성’ 항목에서는 A+를 받았지만, 다른 항목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점수가 가장 낮은 항목은 ‘약속’이다. 기후위기 대응 목표 수립 여부를 평가하는 항목으로, 삼성전자는 F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030년 배출량 목표는 설정하지 않았다. 2030년은 기후위기 대응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2030년까지 모든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제시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려야 한다고 본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현재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량은 TSMC보다 많지만, 상황이 역전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면서 “TSMC는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2030년까지 60%로 늘리고 RE100 달성도 2040년으로 10년 앞당기겠다고 선언했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중간 로드맵도 없이 2050년 RE100 목표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별 기후위기 대응 점수 변화 ⓒ그린피스
기여도 높은 재생에너지 사용량, TSMC의 8분의 1 수준
재생에너지 전환 실적을 평가하는 ‘행동’ 항목에서도 삼성전자는 D-를 받아 하위권에 머물렀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전력 비율은 31%로, 전년 대비 11%p 증가했다. 재생에너지 전력 비율 기준으로 2위를 차지했는데, 인텔이 93%를 달성한 것에 비해 저조한 실적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실이 결여됐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린피스는 재생에너지를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추가성)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한다. 재생에너지를 추가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지가 관건이다. 자체적으로 발전 설비를 구축하는 게 대표적으로 추가성이 높은 방식이다. 또한, 발전사업에 대한 지분 투자, 발전사업자와의 전력구매계약(PPA) 체결도 발전 설비가 늘어나는 효과를 낳는다.
삼성전자가 재생에너지를 조달한 방식은 사실상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소비 전력만큼 REC를 사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된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발급받은 REC가 시장에서 거래된다. 삼성전자는 전기료에 웃돈(프리미엄)을 얹으면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것으로 인정하는 녹색프리미엄 제도도 활용했다. 일각에서는 해당 제도가 위장환경주의(그린워싱)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REC 구매와 녹색프리미엄으로 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을 의존했다.
삼성전자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파운드리 분야의 선두인 TSMC는 다른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전환 비율 10%, 전년 대비 증가율 1%p로 수치상 실적은 삼성전자보다 떨어지지만, 내용 면에서는 낫다. TSMC는 지난해 재생에너지를 2,108만 5천MWh 썼는데, 기여도가 높은 방식으로 96만 3천MWh(44.1%)를 조달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소비량은 2,831만 6천MWh로 이 가운데 기여도가 높은 전력 소비량은 12만 5천MWh(1.4%)에 불과했다. 기여도 높은 전력 소비량은 TSMC가 삼성전자보다 8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한 ‘옹호’ 활동을 평가하는 항목에서도 삼성전자는 D+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린피스는 보고서에 삼성전자가 반도체기후컨소시엄(SCC)에 창립 멤버로 참여하고 이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정책 옹호 활동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또한, “공시를 통해 아시아청정에너지연합에 가입해 아시아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정부의 왜곡된 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대규모 전력 수요에 정부는 LNG 발전소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하는 용인 클러스터는 국가첨단산업의 전초기지로 추진되고 있다. LNG 발전으로 전력을 충당하면,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전환 추세에 역행하게 된다. 애플을 비롯한 파운드리 고객사는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도 RE100을 준수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LNG 발전 전력으로 공장을 돌리면 수주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양 캠페이너는 “기후 대응에 있어 목표 수립과 실제 행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재생에너지 정책 옹호 활동”이라면서 “삼성전자는 가시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을 이유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기후위기 시대에 온실가스를 추가적으로 배출하는 LNG 발전소 6기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내놨다”며 “삼성전자는 적극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대안을 정부와 함께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