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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음반 리뷰를 읽지 않는 세상

서울 마포구 소재의 음반 판매 매장에 진열된 음반들. ⓒ민중의소리

며칠 전 동료 음악평론가와 요즘 사람들이 음반 리뷰를 안 읽는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맞다. 나의 경우에도 음반 리뷰를 썼을 때보다 음악계의 사건과 흐름에 대해 칼럼을 썼을 때 훨씬 반응이 좋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음반 리뷰를 쓰는 일을 주저하게 된다. 음악평론가라면 당연히 음반 리뷰를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고,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써왔지만, 반향이 적으니 힘이 빠진달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음반 리뷰가 깊이 없고 재미도 없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그것만 원인 같지는 않다. 지금은 음반 단위로 음악을 향유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라인 음악서비스 차트 순위대로 듣거나,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특정 음악인의 음악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유행하는 음악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듣고, 어떻게든 좋은 곡을 들으면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귀 기울여 듣기보다 습관적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도 많다. 이런 세상에서 누군가의 음반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그 음악인의 팬뿐일지 모른다.

이처럼 음반의 가치가 떨어진 세상에서는 음반 리뷰가 힘을 얻지 못한다. 사실 지금은 음악 마니아조차 음반 리뷰를 꼼꼼하게 읽지 않는다. 별점이나 점수만 확인한 다음 평점이 높은 음반을 고르는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평론가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평론가의 리뷰와 추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늘 소수였는데, 그 수는 더 줄었다. 각자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이고, 좋아하거나 친숙한 음악을 듣는 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음악은 연극이나 영화와 달리 상세한 해설이 필요하지 않은 장르이기도 하다. 음악은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고, 컷과 앵글 같은 방법론의 근거를 따질 필요가 없다보니 대개 들으면 직관적으로 호불호를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처럼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평론가의 해설과 비평을 찾아보는 일이 드물다. 지금도 리드머, 음악취향Y, 이즘을 비롯한 대중음악웹진과 재즈피플 등의 음악전문잡지들이 운영 중이고, 꾸준히 리뷰를 올리지만 조회 수가 높지 않고 반향도 적다. 그래서인지 음악평론가들 중에 음반 리뷰를 꾸준히 쓰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음악평론가들이 쓰는 글은 대부분 이슈와 트렌드에 대한 칼럼이다. 매체에서도 칼럼만 청탁한다.

기타 연주 장면 ⓒpixabay

사람들이 음반 리뷰에 관심을 가질 때는 아는 음악인, 좋아하는 음악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뿐이다. 알아야 관심을 가진다. 특히 음악마니아들이 음반 리뷰를 주목할 때는 좋아하는 음악인의 음반을 호평할 때다. 의견이 동일해야 관심을 드러낸다. 그때 팬들은 온라인 팬클럽 공간으로 리뷰를 가져가 평론가도 우리 음악인을 알아본다며 자랑스러워한다. 역시 해당 평론가가 안목이 있다며 칭찬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신랄하게 비판당하고 욕을 먹는다. 이런 경험을 하다보면 팬들이 원하는 것은 평론가의 인정이라는 권위와 공증일 뿐, 정직하고 구체적인 평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접할 수 있는 문화예술 작품과 경험이 너무 많다는 현실도 음반 리뷰에 무관심해지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누군가의 시간을 쟁취하려는 노력이 전쟁처럼 벌어지는 세상에서는 어렵지 않고, 쉽게 볼 수 있으며, 짧고 자극적인 무언가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여기저기 널린 작품을 향유하기에도 급급한데 굳이 음반 비평까지 찾아 읽으면서 접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선뜻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음악을 하는 이들이 많아도 그들의 음악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다. 그 음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그 음악으로 건너오지 않는다. 서바이벌 오디션 방식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연과 서사가 없는 낯선 음악으로 선뜻 뛰어드는 이는 드물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고 호평해도 그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 화려한 수사를 입히거나 올해 최고의 음반이라는 식의 직관적인 설명으로 유혹해야 한다. 어쩌면 음악을 찾아가며 들어오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게 음반 리뷰는 너무 전문적이고 어렵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보다는 감성적인 에세이 식의 라이너노트가 훨씬 유용하고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 또한 음반 리뷰에 대한 반응이 적은 이유 아닐까.

음악 감상 (자료사진) ⓒMinh Thái Lê, Pixabay

그렇다고 남 탓, 상황 탓만 할 수는 없다. 지금 음반 리뷰를 쓰는 이들, 나를 포함한 한국의 대중음악평론가들이 냉정하고 솔직하게 음반 리뷰를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호평할 수 있는 음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언급하지만, 혹평해야 하는 음반과 인기 있지만 아쉬운 음반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닫아버렸을 수 있다.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주거나,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의미 있는 인식을 전해주는 데에도 실패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음악평론가들이 정직하고 신랄하고 깊이 있는 비평을 쓰면 될까.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세상의 변화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앞으로 대중음악평론가는 해설이나 선별과 추천 정도의 역할만 수행하며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의견, 다른 태도를 마음 열어 받아들이지 않고 끼리끼리 헤쳐모이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세상에서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음반 리뷰를 계속 써야 할까. 평론가도 고민스러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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