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23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다른 나라의 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의 국제법상 규칙인 ‘국가면제’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적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제 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상식이다. 국가가 비인간적인 불법행위를 다른 나라의 개인에게 저질러서 막대한 피해를 끼쳤을 때에도 국가니까 면제라는 논리는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군다나 전쟁 시기에 저질러진 ‘군 위안부’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에 재판조차 할 수 없다며 면죄부를 준다면 국제법은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피해자들에게 민사소송은 더 이상 구제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수단이다. 여기에서까지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한다면 헌법에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라도 1심 판결을 뒤집어 상식의 편에 선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환영한다.
이번 재판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 사법부의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 판결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게 가해진 국가범죄에 대한 책임은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배상 말고는 달리 피해 갈 길이 있을 수 없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일관되게 피해 사실을 증언해 왔지만 번번이 외면당했다. 가해자인 일본은 계속해서 범죄사실을 부인하면서 피해자를 모욕해 왔다. 긴 시간 동안 재판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피해자 상당수가 운명을 달리 했고 현재 원고 중 피해생존자는 한 분에 불과하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과거의 범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의 도리이며 나아갈 길이다. 과거의 범죄가 천인공노할 만행인 것 못지않게 그 이후 지속적인 책임회피로 피해 치유를 방해하고 고통을 누적시킨 행위 또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기에 급급했던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검토돼야 한다. 오히려 일본보다 더 앞장서서 과거사를 덮으려 해온 정부의 태도는 피해자들과 국민의 마음에 이미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강제동원 소송은 대법원 판결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지만 정부는 ‘제3자 변제’라는 무책임한 방안을 지금도 밀어붙이고 있다. 어느 나라 정부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정부의 대일본 굴욕 외교와 사법부의 판결 취지는 어느 모로 봐도 양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