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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제결제은행 수장의 한국 가계부채 우려, 귀 기울여야

2013년 말 ‘가계부채 1천조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걱정한 지 10년, 2023년 1/4분기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총액은 1천845조 원으로 늘어났다. 지난 24일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비율에 대해 언급하며 “금융당국이 이런 상황을 평가하는 데 있어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 사정에 대해 말을 아껴야 할 처지에 있는 세계 주요 63개국 중앙은행들의 협력기구인 국제결제은행 수장으로부터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들은 셈이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주택가격이 폭락할 경우 대출자의 부채 상환능력을 걱정했고,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비율도 지켜봐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짚어서 말했다.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 우려하는 국제기구의 목소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 9월 헤럴드 핑거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 대표단장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크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부채 증가율을 둔화시키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비슷한 시각은 국내에도 많다. 당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과다한 가계부채가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상황과 비교해보지 않으면 심각성을 간과할 수 있다. 다른 선진국들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엔데믹 이후 소폭 감소세로 접어드는 동안 우리나라는 2021년에 이미 100%를 넘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계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되는지인데,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 비율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200%가 넘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날 때 이 비율이 140%였으니 지금 우리는 이미 위험단계를 한참 지났다고도 할 수 있다. 역대 정부는 이 비율을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고 오히려 ‘빚내서 투기’ 또는 ‘빚내서 집 사라’며 주택담보대출을 부추겨왔다. 당장의 부동산경기 부양을 더 중시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의 명목상 부채축소 정책마저 아예 무시하고 있다. 저출산 정책도, 부동산PF대출 위기극복대책도, 심지어 청년정책도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으로 귀결시켰다. 정부는 올 초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더니, 소득제한도 없이 최대 50년 만기 대출상품지원도 강행했다. 급기야 청년 자산 마련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저소득 청년의 청약 당첨 시 연 2%대 저금리로 장기 대출해주는 ‘청년 드림 대출’을 추진하고 있다. 중장년층 가계에 이어 청년들까지 미래 소득을 모조리 끌어와서 집을 사들이면 어느 순간 소비가 멈추고 성장도 멈추게 된다. 어쩌자고 이렇게 거꾸로 가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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