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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기억과 위로의 또 다른 방식, 416합창단 2023 기획공연 ‘고백告白 하얗게 고하다’

고백_416합창단 ⓒ416합창단(사진 김수형, 정길만)


2014년 4월 16일부터 오늘까지 울지 않고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시간이 많았다. 강의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하다가 통곡이 터져 나올 뻔 해 고개를 숙이고 겨우겨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를 인양하고,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공식 보고서가 나온 후에는 조금씩 세월호를 잊어갔다. 이제는 지나는 사람들의 가방에 흔하게 달려있던 세월호 리본도 대부분 사라졌다. 매년 4월 16일이 되면 다들 잊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마음이 바위처럼 단단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11월 24일 금요일 저녁 7시 반, 서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416합창단의 2023년 기획공연 ‘고백告白 하얗게 고하다’를 보러 가는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여전히 참사의 진상을 다 밝히지 못했으며,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을 안고 찾아가는 공연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416합창단의 공연을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쩌면 울기 위해 가는 공연, 함께 눈물 흘리기 위해 펼치는 공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공연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공연은 총 3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박미리의 지휘와 한은비의 피아노에 맞춰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파트로 나뉜 합창단 38명이 노래했다. 이번 기획공연의 특징은 창작곡을 선보였다는 사실. ‘섬집아기’, ‘봄날’,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조율’ 같은 기존 곡을 섞어 부르면서, 합창단은 그만큼의 창작곡을 선보였다. ‘봄을 보다’부터 ‘너’, ‘그날처럼 오늘도’,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두 개의 세계’,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로 이어진 노래들은 참사를 겪은 이들의 마음을 정직하게 담아냈다.

고백_시민합창 ⓒ416합창단(사진 김수형, 정길만)

“그러나 나는 그 봄을 다 볼 수 없었네 / 그 봄을 다 안을 수 없었네”(’봄을 보다‘), “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 날마다 고마웠어 매순간 사랑했어”(’너‘),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도 선 듯 불어오는 바람에도 네가 있어”(’그날처럼 오늘도‘), “바다가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 4월이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눈부시게 웃는 네 사진 한 장에 매달려 오늘을 산다”(’두 개의 세계‘)같은 노랫말이 노래가 되어 흐를 때, 지나간 9년의 시간이 수없이 겹쳐졌다. 그 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과 통곡이 터져 나왔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행여 416합창단 중 누구라도 노래를 부르다 울지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공연을 지켜보는 이들 또한 눈물바다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합창단의 노래는 무척이나 고요하고 따뜻해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가장 큰 소리로 가장 오래 울어왔을 이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관객들이 그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는 시간이 펼쳐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격렬하지 않고 비장하지 않은 노래, 잔잔하고 부드러운 합창은 이들의 지난 9년이 어떠했는지 노래로 증언했다. 도무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시간, 노래라도 부르자고 모였지만 울기만 하느라 노래를 부르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고 서른여덟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이어진 결과였다. 견디기 위해 부른 노래였을 것이다.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기 위한 노래였을 것이다. 416합창단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시간을 노래를 타고 건너왔다. 그리고 노래로 말을 걸었다. 우리는 괜찮다고, 아니 괜찮지 않다고. 너는 잘 있냐고, 당신은 어떠냐고. 목소리를 낮춘 노래, 따뜻한 노래는 그렇게 목소리를 낮추고 화음을 맞추고 온기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시간으로 초대했다. 그렇게 서로의 다른 시간이 만났다.

고백_연극 ⓒ416합창단(사진 김수형, 정길만)

416합창단은 노래만으로 말하지 않았다. 연극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를 준비해 함께 보여주었고, 합창단에 참여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민합창단이 카메오처럼 등장해 함께 노래 불렀고, 서울민예총 풍물굿위원회의 연주자들이 거들었다. 한 편의 공연으로 손색없는 공연이었는데, 합창단만큼 많은 제작진들이 애쓴 결과였다. 덕분에 90분 동안 노래와 극과 영상으로 고백하고 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만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냈으며, 다시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 참사의 당사자들과 연대자들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노래는 비극의 순간도 외면하지 않았다고 써도 될까. 어쩌면 416합창단 덕분에 노래는 더 아파지고, 따뜻해질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가 노래의 온기를 지켜주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절망했지만, 그 슬픔과 분노로 다른 세상을 향한 꿈을 더욱 단단하게 벼릴 수 있었던 일과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만 듣지는 않았을 노래. 노래가 삶이 되고 연결이 되고 약속이 되는 드문 시간. 음악의 역할을 찾고 보여준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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