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제)1의兒孩(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第(제)2의兒孩(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第(제)3의兒孩(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이상의 시 ‘오감도’ 중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불안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시인, 폐병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늘 함께했던 남자. 바로 ‘오감도’의 시인 이상이다. 이상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다. 한국 현대문학 최초의 심리주의 작가, 일제 강점기에 무기력한 지식인의 삶을 보여준다는 수능시험 요약은 잊어도 된다. 독자에게 외면받고 시대에 좌절했던 한 시인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온전히 한 사람을 이해해 볼 수 있는 창작 뮤지컬 ‘스모크’가 네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뮤지컬 ‘스모크’는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추정화 작·연출과 허수현 작곡·음악감독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이상의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시어를 무대 위로 옮겨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조각난 유리를 이어붙인 것 같은 삼면의 무대 배경은 몽환적이고 독특하다. 무대는 작품인지, 쓰레기인지 알 수 없게 쌓여 있는 원고 더미와, 이질적인 고풍스러운 가구와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창작 뮤지컬 스모크 공연 사진 ⓒ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고뇌를 멈추지 않는 ‘초(超)’와 끊임없이 바다를 동경하는 순수함을 간직한 ‘해(海)’, ‘초(超)’와 ‘해(海)’의 고통을 같이 견디며 운명을 함께하는 ‘홍(紅)’을 통해 전개된다. 초와 해는 바다로 가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미쓰코시 백화점 딸을 유괴하기로 한다. 두 사람은 백화점 사장에게 딸의 몸값을 받으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괴된 여자는 자신은 미쓰코시 백화점의 딸이 아니라고 밝힌다. 해가 홍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자에게 자꾸 끌리게 되자 초는 홍의 정체를 해에게 알려주게 된다. 이제 처음의 사건과 다른 방향으로 변해가는 세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른 존재로 보였던 초와 해, 홍은 모두 시인 이상이다. 혼란과 방황 속에서 괴로워했을 이상의 심리를 상징하는 세 존재는 서로 치열하게 대립한다. 더이상 의미없는 시를 쓰지 않겠다는 초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이상의 세계로 떠나고 싶은 해, 힘들지만 견디고 살아야 한다는 홍의 대립은 어떻게 끝이 날까? 이상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극 속에는 아스피린, 아다날, 날개, 미쓰코시 백화점 등 이상의 작품 속 주요 소재가 등장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이상의 ‘날개’ 중)와 같은 소설 속 문장들도 등장한다. 노래와 움직임, 배우들의 언어는 이상의 삶뿐만 아니라 이상의 글을 입체감 있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창작 뮤지컬 스모크 공연 사진 ⓒ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초(超)’ 역에는 배우 김재범, 김경수, 정민, 박정원이 열연을 펼친다. ‘해(海)’ 역에는 손유동, 강찬, 홍승안이 캐스팅됐다. ‘홍(紅)’ 역에는 김지유, 김청아, 장보람, 최지혜가 무대에 오른다. 작·연출을 맡은 추정화 연출은 네 번째 시즌 개막을 앞두고 “무대 디자인, 영상, 의상 등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인 변화를 통해 작품성은 지키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움을 더한 뮤지컬 ‘스모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모크’는 2024년 2월 4일까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