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지학의 세상다양] 세계성학회는 왜 다시 ‘동의’와 ‘포괄적 성교육’에 주목하는가?

올해 튀르키예에서 열린 세계성학회(WAS, World Association for Sexual Health)는 ‘동의’를 핵심 의제로 선정했다. 전세계에서 모인 350명의 학자 및 활동가들은 4일 내내 ‘동의(Consent)’를 주제로 끊임없이 진지한 논의를 이어갔다. 너무나 기본적이고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심각한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영역인 까닭에 이 주제는 무척 중요했다.

캐나다 Trent 대학교 Terry Humphreys 심리학과 교수는 연구 결과를 통해 현재 20대들이 가지고 있는 동의에 대한 생각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Trent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내용인데 한국의 대학생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20대들이 교육을 통해 동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동의의 개념도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지식으로는 완벽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천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전히 명확한 동의가 아닌, 분위기를 통해 마음대로 파악하고 성역할 고정관념에 의해 판단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 지식을 실천으로 전환시킬 때’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어떻게 하면 구체적인 말과 행동으로 동의를 구하는 것이 문화가 되고 일상이 되게 할 수 있을까?

Figure 1. (좌) Terry Humphreys 교수가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우) 김지학 소장과의 사진 ⓒ필자 제공

Terry Humphreys교수는 BDSMer들의 명시적인 방식을 추천했다. 말과 글로 구체적으로 서로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직 잘 모르겠는 것들을 함께 찾고 함께 하기로 결정하는 것들만 하는 방식이다. 체크리스트를 함께 할 수도 있다. 이는 내가 대한성학회를 통해서도 다룬 바가 있었던 부분이라, 학회원들이 거부감을 표했던 반응들에 대해 질의했다. 가령 BDSMer들이 하는 동의 구하기 실천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 내용에 대해서 잘 듣기보다 BDSM이라는 말만 듣고 불편해하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자꾸 자신을 때려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눈 가리고 있을 때 몰래 영상을 찍으면 어떻게 해요?’ 등이다. Terry Humphreys교수는 이에 대해 첫째, 완전히 명시적으로 동의를 한 행동들만 함께하는 것이 BDSMer들의 원칙이고 규칙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말했다. 동의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며, 그런 질문을 갖는 사람에게는 “동의”에 대해서 더 잘 성찰해 보기를 권했다. 둘째, 어느 한 그룹에서 제일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다른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다. Best Practice(베스트 프렉티스: 가장 잘되고 있는 실천)다. BDSMer가 되라거나 BDSM을 하라는 게 아니라 BDSMer들이 잘하는 게 있다면 그게 동의 구하기라면 BDSM을 하지 않는 그룹에서도 그들이 하는 방식의 동의 구하기를 배워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정 BDSM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고 싶지 않다면 BDSM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냥 ‘명시적인 동의 구하기’라고 표현하며 체크리스트를 함께 하거나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면 된다고도 했다.


말로 물어보면 분위기를 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훨씬 더 예의있고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며 더 섹시한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물어볼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는 20대 대상 성교육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연습해 보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 보게 한다. 성관계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구체적인 소통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이는 성관계를 알아서 잘 주도하는 성별이 따로 있고, 자신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성별이 따로 있다고 여기는 ‘성별 고정관념’의 영향도 크다.

난 지금 너한테 키스하고 싶은데, 넌 어때?
난 우리가 000하는 걸 상상하면 엄청 흥분돼. 넌 어떻게 생각해?
내가 000 해주면 기분 좋을 것 같아?
우리 000 시도해 볼까?
나한테 000 해봐 줄 수 있어?
더 세게 할까? 조금 살살할까?


이런 대화법은 성적인 행동을 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존중한다면 얼마든지 이렇게 질문하고 존중하는 말하기를 할 수 있다. 자신이 사용하는 문장들을 명령(혹은 강력한 권고)이 아닌 질문형으로 바꾸면 좋다. ‘지금 바쁘세요? 혹시 잠시 이쪽으로 와 주실 수 있으실까요?’와 같은 방식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상황과 의견을 “실제로” 경청, 존중해야 한다. 문장은 질문형으로 말했지만 ‘지금 당장 이리로 와라’가 아니게 하려면 상대방이 ‘5분 후에 봬도 될까요?’, ‘30분 후에 미팅해도 될까요?’ 등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고 그 의견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아주 급한 일일 때는 또다시 나의 상황을 말하면 된다. 일상에서 존중에 기반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은 성적 행동을 할 때도 더 쉽게 할 수 있다. 일상의 언어를 통해 존중, 질문, 동의, 거절이 일어나지 않으면 성적 행동을 할 때만 갑자기 그런 언어를 쓰기 너무나 힘들다.

Figure 2. Alessio Platania 활동가가 진행한 워크숍의 모습 ⓒ필자 제공

지금까지 소개한 것이 현실의 진단이자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의한 현상이었다면, 대안을 제시한 세션들도 다양하게 이어졌다. 영국 알레시오(Alessio Platania) 활동가의 세션은 동의에 대해 주목할 만한 개념과 실천법을 제시했다. 알레시오는 동의의 바퀴(The wheel of consent)라는 개념과 실천법을 개발한 Betty Martin 작가/활동가에게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Figure 3. 동의의 바퀴(The wheel of consent) ⓒ필자 제공

동의의 바퀴는 X축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Y축은 ‘하는 사람’과 ‘누구에게 하게 되는지’로 나뉘어져 4분면이 나온다. 4분면은 각각 ‘내가 나의 즐거움(Pleasure)을 위해서 너에게 000을 한다, 내가 너의 즐거움을 위해서 너에게 000을 한다, 네가 너의 즐거움을 위해서 나에게 000을 한다, 네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000을 한다’로 나뉘게 된다.

이 세션에 모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연습을 이어갔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짝을 이루어서 질문을 했다. 가령 ‘내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당신의 손을 3분간 만져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질문에 대해 동의 혹은 거절을 한다. 동의를 한다면, 자신의 손을 만질 때 어떻게 만질 수 있는지 그리고 내 손을 어떤 방식으로는 사용하면 안 되는지 등의 조건을 충분히 이야기한다. 그러면 질문한 사람은 그대로만 할 수 있다. 활동을 마친 후에는 활동하는 중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 대화를 했으며, 질문한 사람과 대답한 사람을 바꿔서도 한 번 더 연습을 이어갔다.

그다음 연습은 ‘당신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당신의 손을 만져줘도 됩니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았다면, 동의 혹은 거절을 할 수 있는데 동의를 한다면 ‘이 사람이 내 손을 만졌을 때 내가 기분이 좋으려면 이 사람한테 뭘 요구해야 될까’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기분 좋은 방식을 생각해서 답하면 질문한 사람은 그대로 한다. 물론 자신이 응할 수 없는 요구라면 그 부분을 또 대화할 수 있다. 


이 활동의 핵심은 손을 직접 만지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그 과정이 핵심이다. 이 활동을 할 때는 직접 참여를 하는 것도 참여지만 직접 참여를 하지 않고 관찰만 하더라도 참여라고 했다. 질문하고 답하는 것을 보고 듣고 그 과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Figure 4. 한국다양성연구소 스티커 놀이 ⓒ필자 제공

나는 한국에서는 이 활동을 스티커나 빨래집게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티커나 빨래집게를 활용해서 ‘여기에 붙여도 될까요?’, ‘여기 붙이신 거 떼도 될까요?’ 이런 질문을 하며 질문과 대답을 통해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대화를 익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절해 보기’와 ‘거절 받기’다. 스티커나 빨래집게를 붙이고 떼는 게 별것도 아닌데 막상 해보면 상대방이 거절을 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묘하게 기분이 나쁘고 나도 복수하고 싶다. 그래서 거절하기와 거절당하기 연습을 통해 동의를 연습해 보는 게 중요하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나도 기쁘게 하고 상대방도 기쁘게 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다른 경우에는 나의 즐거움보다 상대방의 즐거움을 더 고려해서 하는 행동들도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상대방의 즐거움보다 나의 즐거움을 더 고려해서 하는 행동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동의의 바퀴 4분면에 다 들어있고 모든 것은 대화와 동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성관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평등한 관계에서 가능하다.
현시점의 열정적인 그리고 의식적인 동의 하에 가능하다.
동의는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계속 만들어간다.


평등하지 않으면 성관계라고 할 수 없다. 위계나 위력을 이용한 행위는 평등한 관계였다고 볼 수 없다. 동의는 단순히 ‘좋아’ 혹은 ‘싫어’를 답하는 게 아니다.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할 수 있는 관계나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침묵 또한 동의가 아니다. 그래서 “열정적인”이라는 표현이 붙는 것이다. 술이나 약물 또는 그루밍과 같은 정신적 지배를 통해서 얻은 동의는 동의가 아니다. 지난주에 동의했다고 오늘도 하고 싶은 게 아니고 어제 동의했다고 지금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또한 성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동의했다고 해서 중간에 번복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행위 중에도 계속 동의할 수 있고 거절할 수 있다.

아일랜드 University of Galway 심리학과의 액티브 콘센트(Active Consent) 연극팀은 ‘보여주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보여주기(Showing)가 말로 알려주는 것(Telling)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는 생각을 가지고(연구를 통해 증명되기도 했음) 활동하고 있다.

이 팀은 네 명의 배우들이 여러 가지 상황들을 연기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교육 참여자들은 이 영상을 보고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어땠나요? 당신은 누구에게 감정 이입됐나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와 같은 질문에 답하게 되는데 활동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어 보기도 하고 옆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연극팀이 직접 현장에 가서 연극으로 연극 수업을 하기도 하고 대화 진행자가 연극팀의 영상을 활용하기도 하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강연식 수업으로 그저 개념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들을 직접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고 감정 이입해서 생각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Figure 5. 한국다양성연구소 자기방어훈련, 공동체방어훈련 프로그램 소개 ⓒ필자 제공

한국다양성연구소도 비슷한 방법으로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과 함께 공동체방어훈련을 진행하고 있어, 이 자리에서 소개할 수 있었다. 자기방어훈련은 자기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멀리 위치시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이다. 연구소는 안전을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동체가 모든 사람의 안전을 유지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공동체원이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는 국내외에서도 주변인 개입 훈련(Bystander Intervention Training)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훈련방법이다. 주변인 개입 훈련을 진행하며 발견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연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과 공동체 방어 훈련(주변인 개입 훈련)을 하면 종종 ‘야, 이 XX야 옥상으로 따라와! 원펀치 쓰리강냉이야’ 이러면서 ‘얼굴 딱 대’ 이렇게 장난을 할 때가 많다. 그러면, 나쁜 사람들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 주면서도 ‘사람을 때리게 되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때릴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욕으로 맞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다시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래와 같이 상황이나 관계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들의 예시들을 배운 후 여러 가지 상황에 대입해 본다.

Figure 6. 공동체방어훈련, 주변인개입훈련의 접근 전략 ⓒ필자 제공


아래 예시처럼 시나리오를 주고 그 상황과 배역(관계)에 따라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 방법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상황극을 만들어서 발표한다.

Figure 7. 상황극 만들기 예시 시나리오 ⓒ필자 제공

또는 활동가들이 직접 연극을 해서 보여주며 ‘방금 본 이 연극 속에서 내가 주변인이 된다면 어떻게 개입하고 싶은지’ 묻고 직접 배역을 맡아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미리 직접 연습을 해야만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학교에서 일터에서 그 상황에서 직접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긴다.


Figure 8. (좌) Esben Esther Pirelli Benestad 활동가의 자료화면, (우) 김지학 소장과의 사진 ⓒ필자 제공

노르웨이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트랜스 활동가이자 심리학자이고 성학자인 에스벤 에스더(Esben Esther Pirelli Benestad)는 동의의 개념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신체와 삶,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 등 내가 먼저 동의하고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낙인을 주고 편견을 주고 나를 혐오하고 싫어하게 하는 수만 가지 이유를 주기 때문에 내가 나의 몸과 삶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즐겁게 살 수 있는 성적 행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를 긍정하고 동의해야 된다는 ‘Consent to yourself’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이번 세계성학회에서 제일 많이 나온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즐거움(Pleasure)이다. 너무나 많은 연사들이 이 주제를 다뤘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제 발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세라(Sarah Fletcher) 활동가의 “수치심 없는 즐거움(Shameless Pleasure)”이다. 성적 즐거움에는 어떤 수치심(부끄러움, 낙인)도 없어야 한다고 말하며, 수치심은 억압에서 온다고 설명했다.

상호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성적 행동은 즐거움, 기쁨, 연결이다. 스트레스 감소, 위안, 위로, 안도, 편안함, 치유, 사랑 표현이 섹스다. 섹스를 하는데 다른 어떤 이유도 필요 없다. 그리고 섹스를 한다는 것에 그 어떠한 수치심도 가질 이유가 없다. 즐거움이 없으면 섹스가 아니다. 오히려 섹스를 하는데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 문제다. 즐거움이 아닌 다른 이유(돈이든 강제든)로 섹스를 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섹스를 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즐겁지 않게 한다면(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무섭게 한다면) 섹스가 아니다. 폭력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성교육 역시 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방식이 아닌, 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사회에는 즐거움 중심(Pleasure centered)의 성교육이 필요하다. 임신과 성병으로 겁을 주고 섹스를 하지 말라고 하는 성교육은 두려움과 수치심을 조장하는 것이며, 이것은 두려움과 수치심만을 줄뿐 실제 교육자가 의도하는 대로 ‘예방’의 효과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어 있는 사실이다.

몸과 성적 행동에 대한 탐구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성적 권리이자 성적 건강을 증가하게 한다.


특히 우리는 여성에게 월경, 바디 이미지, 성욕, 자위, 성 경험 등으로 수치심을 주는 사회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시스 헤테로 여성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파트너의 성적 즐거움을 위해서만 섹스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청소년, 장애인, 노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수많은 사람들이 성적 존재가 될 때 수치심을 갖게 만든다. 이 수치심을 걷어내고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정상이란 없다. 수치심과 낙인을 부수고 정상성을 재구성해야 된다. 정상이란 안전과 건강과 상호 동의가 정상이다. 비정상과의 구분과 차별을 위한 정상은 없다. 수치심은 억압으로부터 온다. 수치심, 낙인, 부끄러움, 두려움은 섹스의 즐거움을 뺏어간다.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행동들은 폭력인 것이지 섹스에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다. 즐거움이 전부다. 즐거움은 자유를 준다. 자기 자신과 스스로 얼마나 친밀해지는지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다른 연구 발표에서 콜롬비아 대학교 공중보건학과 교수인 Jessie Ford 교수는 ‘성적 즐거움 추구가 행복과 전체적인 삶의 웰빙을 증가하게 한다’고 했다. 발표가 끝난 뒤 ‘성적 즐거움을 많이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경제력이 좀 더 있는 사람 아닐까? 경제력과 건강 그리고 행복의 연관성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는 경제력은 당연히 관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력을 변하지 않는 변수로 두고 조사했고 그래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답했다. 경제력이 같은 그룹에서도(가난한 그룹이나 부자인 그룹에서도) 얼마나 많이 성적 즐거움을 추구했는가에 따라 삶의 전반적인 행복과 웰빙이 증가하는 것을 찾았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포괄적 성교육(CSE, 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에 대한 연구 발표가 많이 이어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포괄적 성교육과 성평등을 향한 공격이 심해져, 지난 몇 년간보다 CSE에 대한 연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포괄적 성교육의 긍정적인 효과를 발표한 연구자들은 아주 많았다. 그 중 Utrecht University 연구자들의 ‘교사의 관점으로 보는 모두를 포함하는 긍정적 성교육’ 연구 발표에서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남겼다. “성교육은 국가의 방침으로 공공 영역에서 해야 한다. 국가가 역할을 하지 않아서 사교육 기관으로 넘어가게 하는 게 아니라 국가 기관(공교육)과 공공기관에서 해야 한다. 국가는 성교육 활동가들에게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교육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직접 성교육을 할 수 있는 정도까지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에 유일하게 스웨덴만이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포괄적 성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스웨덴도 이 법을 통과시킨지 얼마 안됐고 이제 시작이다. 한국으로 치면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대, 교대, 교육 대학원에 다닐 때 포괄적 성교육을 이수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학교마다 자체적으로 ‘성교육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학교가 성교육에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직접 추진해야 한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연구자, 활동가, 상담가들이었다. 자신을 Sexologist(성학자, 성과학자)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심리학과 대학원생과 교수들 제일 많았다. 심리학 다음으로는 사회학, 교육학, 인류학, 의학 전공이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Sex therapist(성상담가)로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전공하고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평등 활동가들, 성교육 활동가들도 많았다. 성교육과 라이프코칭을 함께 하는 Sex coach(성코치)도 많았다. 수십 개 국가들에서 모였는데 미국의 연구자들이 가장 많았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일본의 연구자들이 제일 많았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인 활동가를 제외하곤 한국에서 온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한국 사회에도 훌륭한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활동가들과 단체들이 있고, 필요한 목소리를 내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성(젠더, 섹슈얼리티, 성적 권리, 성건강 등)에 대한 연구나 활동에 대한 관심이 아주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은 성별고정관념과 성차별, 억압이 여전한 현실에서 성별화된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누군가에는 행복을,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폭력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에 반드시 이런 주제들을 더 많이 더 깊게 이야기 되어야만 한다. 성은 부끄럽거나 위험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요하고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의 영역에서 그리고 삶을 더욱더 즐겁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다뤄져야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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