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삼백팔십이나 된다. … 그러나 이렇게 넓은 서울도 삼백칠십만이 정작 살아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입만 까지고 약아지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며 낑낑거리고, 신문들은 고래고래 소리나 지른다.” - 이호철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 중에서
이호철 소설가가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쓸 당시 서울 인구는 380만 명이었다. 이때의 서울은 강북에만 존재했다. 그럼에도 서울은 이미 만원(滿員)이었다. 서울은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수백년 동안 우리 시대의 각종 욕망이 모여 용광로처럼 이글대는 도시였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서울은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이호철 소설가는 소설 발표 3년 뒤인 1969년 중앙일보에 자신의 소설과 같은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했다. 그는 “서울인구는 드디어 5백만을 육박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구가 4백80만이라니까, 사실상 서울에서 늘 들끓고 있는 인구는 5백만이 훨씬 넘는다는 계산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 “어쨌든 모든 것이 매머드화해 가는 서울은 현대도시의 외모를 갖추면서 사실은 공포의 지대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는 인상이 없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구의 지방분산 이라는 정부의 시책이 어쩐지 역행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데 대한 정부당국의 답변이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1960년대에 이미 서울은 매더드화된 초만원 도시였고, 정부는 그때부터 ‘인구의 지방분산’을 중요한 과제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서울은 이후에도 팽창을 거듭했다.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강남을 개발했지만, 부동산 광풍과 함께 서울은 더 커졌고, 욕망도 그만큼 커져 갔다.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도시들도 들끓는 욕망과 함께 덩달아 커졌다.
커져만 가는 서울과 신기루 같은 욕망은 선거를 위한 흥행도구로 활용됐다. 말로는 ‘지방 발전’과 ‘국토 균형발전’을 외치다가도 선거 때가 되면 자본가들과 그들과 함께 성장을 거듭해온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국민의 욕망을 부채질했다. 박정희가 출마한 5대 대통령선거가 열린 1963년엔 경기도 지역을 도시계획구역에 포함해 서울 확장시켰다. 박정희가 7대부터 9대 대통령을 연이어 했던 1970년대엔 ‘복부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며 강남 개발 광풍이 몰아쳤다. 1980년대엔 전두환 정권이 서울 곳곳에 정비 사업을 명목으로 폭력배를 동원해 판잣집을 헐고, 아파트를 지었다. 경기도엔 연이어 신도시가 세워졌다.
이런 개발 광풍 아래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 만든 재개발사업 브랜드인 ‘뉴타운’은 2000년대엔 서울과 수도권을 강타했다. 2002년 서울시장 취임 뒤 그는 시범 뉴타운 지구 3곳을 지정했고, 한 달 만에 땅값이 두 배로 치솟았다. 뉴타운의 재산증식 효과가 입증되자 서울시의 각 구에선 앞 다퉈 뉴타운 지정을 요청했고, 이명박 시장은 2003년 말 2차 뉴타운에 이어 2006년 초까지 모두 34곳의 뉴타운을 지정한다.
뉴타운과 함께 이명박은 용산 뚝섬 한강변 등 3대 강북 거점을 집중 개발, 강남으로 몰리는 고급 주택 수요를 다시 한강 이북으로 되돌리겠다는 구상인 ‘U턴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U턴 프로젝트’의 중심에 놓인 것이 용산역세권 개발이었고, 2009년 1월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했던 용산참사를 불러온 국제빌딩 주변 4구역 재개발도 이 용산역세권 개발의 일부였다. 용산참사는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지속해 온 각종 ‘개발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반서민적이고 폭력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문제에도 욕망에 자극받은 많은 이들은 부자를 꿈꾸며 이명박을 지지했고, 그는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명박의 성공에 자극받은 당시 한나라당은 2008년 총선에서 서울의 29개 지역구에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다. 총선이 치러진 4월을 전후해 강북과 서남부의 아파트 가격이 요동쳤다. 치솟은 부동산 가격과 함께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에서 서울 48개 지역구 가운데 무려 40개를 가져갔다. 경기 32석과 인천 9석을 합해 수도권에서만 81석을 차지하며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이 됐다. 선거가 끝난 뒤 상당수 뉴타운 사업은 부동산 투기만 일으킨 채 좌초됐다. 개발에 성공한 뉴타운 사업도 땅과 주택을 가진 일부에게만 이익이 집중됐고, 세입자 등 많은 이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22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국민의힘은 느닷없이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김포시를 시작으로 서울에 인접한 광명, 시흥, 구리, 하남 등을 언급하며 메가서울을 만들겠다고 수도권 유권자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총선을 위해 급조된 공약이라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이 메가서울을 외칠 때 지난 11월 1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난 1일 윤석열 정부 지방정책의 마스터플랜인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전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교육 혁신은 지역이 주도하는 것으로 중앙정부는 쥐고 있는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방분권’을 외치고, 여당은 국민의힘은 ‘메가서울’을 외치는 기묘한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진 것이다.
60여년 전 이호철 소설가가 던진 이야기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울은 만원”이다. 그럼에도 메가서울을 외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인구의 지방분산 이라는 정부의 시책이 어쩐지 역행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데 대한 정부당국의 답변이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