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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페미니스트 사상검증’에 동조한 넥슨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 나오는 한 여성 캐릭터의 ‘집게손가락’ 모양이 갑자기 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캐릭터의 ‘집게손가락’ 모양은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조롱하는 의미인데 제작사가 의도적으로 남성혐오 메시지를 넣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오면서다. 해당 홍보영상을 만든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도 이어졌다.

하지만 논란의 ‘집게손가락’ 모양을 만든 작가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 페미니스트 작가가 의도적으로 영상에 남성혐오의 상징을 넣은 것”이라는 주장이 허황된 ‘페미니스트 사상검증’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남성혐오를 조장할 의도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장면은 캐릭터가 손가락으로 반쪽짜리 하트 모양을 만든 뒤 하트를 뿜어내는 동작에서 1초도 안 될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을 두고 뜬금없이 남성혐오 논란이 빚어진 것이다.

통상적인 제작 과정을 살펴봐도 작가 개인이 특정 의도를 작품에 숨겨 넣기 힘든 구조다. 앞뒤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해프닝으로 끝났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원청사인 넥슨의 섣부른 대응과 책임 회피가 오히려 논란을 키운 형국이다. 넥슨은 초기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지는 조사도 없이 홍보영상을 제작한 하청사에 법적 조치를 운운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특히 김창섭 넥슨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히면서 캐릭터의 ‘집게손가락’ 모양을 남성혐오로 직접 규정하고 나섰다. 이는 억지로 트집잡으며 페미니스트를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쏟아낸 혐오세력에 넥슨이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넥슨의 이러한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넥슨은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여성 성우를 배제하면서 ‘페미니스트를 퇴출하라’는 일부 혐오세력의 요구를 수용하는 최초의 선례를 만들었고, 이후 게임업계에선 ‘페미니스트 사상검증’이 잇따랐다. 사회 영향력을 지닌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에 ‘현대판 마녀사냥’의 피해자만 늘어나고 있다. 넥슨은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 사태에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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