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의 적용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재초환법 개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다. 재초환은 공공의 권한으로 준 용적률이나 종상향 등의 혜택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초과이익의 규모에 따라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재초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면, 재초환법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건축에 따른 초과이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환수할 수 있는 부담금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재초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는 초과이익을 계산하는 시점을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구성’ 단계에서 ‘조합설립인가’ 단계로 늦춘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부담금 부과 기준을 기존의 3천만원에서 8천만원으로 올린다. 초과이익 발생하더라도 8천만원까진 부담금이 ‘0원’이라는 의미다.
부담금 부과 구간도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8천만원~1억3천만원 사이인 경우 10% ▲1억3천만원~1억8천만원이면 20% ▲1억8천만원~2억3천만원이면 30% ▲2억3천만원~2억8천만원이면 40% ▲2억8천만원 초과면 50%의 부담금을 부과한다.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감면 혜택 조항도 신설한다. 장기보유 기간이 20년 이상이면 최대 70%, 10년 이상이면 50% 감면해 준다. 이어 ▲9년 이상~10년 미만은 40% ▲8년 이상~9년 미만은 30% ▲7년 이상~8년 미만은 20% ▲6년 이상~7년 미만은 10% 감면한다.
여기에 만 60세 이상의 고령자 1주택자는 담보 제공을 전제로 상속, 증여, 양도 등 해당 주택의 처분 시점까지 부담금 납부를 유예할 수 있도록 한다.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오는 8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의결된 법안은 공포 후 3개월 뒤 시행된다.
재초환법 개악의 핵심은 ‘부담금 부과 개시 시점’ 변경 ... 전문가들 “사실상 재초환법 무력화”
이 같은 재초환법 개정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담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초과이익 책정 시점을 ‘조합 설립 추진위 구성’ 단계에서 ‘조합설립인가’ 단계로 늦추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애초에 초과이익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제대로 책정할 수 없도록 해, 재초환법 자체를 무력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건축초과이익’은 재건축사업으로 인한 정상 주택가격 상승분을 초과해 조합에 귀속된 이익을 말한다. 정확히는 재건축 사업 종료시점 주택가액(공시가격)에서 재건축 개시 시점 주택가액(조합 설립 추진위 구성 당시 공시가격)과 공사비, 조합운영비 등 개발비용, 정상주택가격 상승분을 뺀 뒤 조합원 수로 나눈 액수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초과이익을 계산하는 시점 조합설립 인가 이후로 늦춘 건 결국 초과이익을 낮추기 위해서다”라며 “이미 재개발 사업 변수가 시장에 반영된 뒤에 초과이익을 계산하는 만큼 초과이익 감면 폭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국회가 재건축 부담금 부과 개시 시점을 조합설립 인가 단계로 늦추겠다고 하는 건 사실상 초과이익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도”라며 “재건축 과정에서 집값이 많이 오르는 시기가 바로 추진위 구성 직후부터다. 조합설립 인가 때는 이미 오를 만큼 올랐을 시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 소장은 “재초환의 기본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이 ‘개발이익을 언제부터로 보느냐’다”라며 “이번 개정안은 바로 이런 설계의 틀 자체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장인 이강훈 변호사도 “재건축부담금의 부과개시시점을 조합설립인가일로 변경하는 내용은 재건축이 실질적으로 추진된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승인일로부터 조합 설립시까지 발생하는 초과이익 환수를 면제해 주는 내용”이라며 “재초환 자체를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건축초과이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않을 경우 자칫 부동산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재초환은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다시 시작한 제도인데, 이번 정부에서 과도한 초과이익을 보존해 주면 다시 투기 세력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효주 간사는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재건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늘어날 것이 분명한 만큼 투기 세력이 많이 모여들 가능성이 높다”며 “투기 세력이 늘어나면 ‘집값 상승’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소장도 “재건축초과이익 환수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자체가 투기 세력들에겐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국가가 투기 세력들에게 돈을 벌게 해줄 테니 투기하라고 부추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