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자아살해 사회의 ‘각자도생’론

침강하는 한국경제, 이륙의 조건을 묻다 ①

편집자주

최근 들어 한국경제의 정체와 둔화 가능성을 두고 우려와 관심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이대로 가라앉고 말까요. 아니면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이륙할 수 있을까요. 혹시 시공간을 달리하는 다른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혹시 새로운 이륙의 조건에 대해 작은 암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23년 연말을 맞아 경북대 나원준 교수가 풀어놓는 성장 문명의 역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를 고민해보겠습니다.


한국경제가 가라앉고 있다. 성장률 지표를 보면 징후가 여실하다. 국책연구원들은 앞다투어 미래 성장세의 하락을 예측한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정도가 지나면 성장률이 0.5% 근방을 못 벗어난다는 전망은 썩 반갑지 않다. 성장의 멈춤 자체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 멈춤이 초래된 배경을 짚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서 그렇다.

한국경제의 정체는 21세기 들어 첫 10년간 중국의 등 위에 올라 전성기를 구가해온 주력 제조업의 위기와도 연동된다. 중미 갈등과 기술경쟁,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세계경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받을 한국 제조업에는 그 모든 변화가 막상 운명처럼 주어질 뿐이다. 제국에 예속된 민족은 변화를 타율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노예를 먹여 살리던 산업과 일자리가 태평양 너머로 떠나도 한때나마 누리던 자유는 본래 그들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 담은 리어카 끌고 이동하는 길에 은행나무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김철수 기자

자아살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성장률을 벗어나 사회의 맨살을 보면 침강이 더 뚜렷하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 0.7이라는 숫자 뒤로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경고하는 이 사회의 아픔을 마주한다. 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사회, 그러나 그 속의 사람들은 살고 싶다. 그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사회안전망이 가장 열악한 축에 드는 이 나라는 공적 복지의 빈자리를 각자도생으로 채워낸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재정 부담이 제일 적은 소위 ‘자산 기반 사적 복지’를 조장해 왔다. 때로 정책을 바꿔 집값만 부추기면 되는 길이었다. 작은 정부의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수십 년을 견뎠다. 그 결과, 이젠 아파트 없이는 자산 형성도 안 되고 노후도 없다. 그래서 다들 빚을 낸다. 그래도 의대만 가면 해결된다. 그래서 강남과 사교육은 불패다. 그러나 원한다고 누구나 의대를, 강남을, 아파트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은 정부에게 제일 쉬웠던 그 길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가계부채만 천정부지로 늘려온 사회 소멸의 길이었다.

각자도생의 자산 기반 복지는 사회 소멸의 길이었다

한국경제는 이대로 가라앉고 말까. 아니면 자아살해를 그치고 다시 생명의 힘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우리가 시공간을 달리하는 다른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혹시 이륙의 조건에 대한 암시를 얻을 수 있을까.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 연재는 성장 문명의 역사, 그 한 단면의 이야기다. 먼 옛날 먼 땅인 산업혁명기 영국의 경험을 간략히 반추함으로써 오늘 한국사회를 사는 사람들을 고민하는 시론적인 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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