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산업혁명, 이륙하다

침강하는 한국경제, 이륙의 조건을 묻다 ②

편집자주

최근 들어 한국경제의 정체와 둔화 가능성을 두고 우려와 관심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이대로 가라앉고 말까요. 아니면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이륙할 수 있을까요. 혹시 시공간을 달리하는 다른 사회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혹시 새로운 이륙의 조건에 대해 작은 암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23년 연말을 맞아 경북대 나원준 교수가 풀어놓는 성장 문명의 역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를 고민해보겠습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발한 1760년대는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 이후에야 경제성장은 비로소 지속성을 띤 현상이 되었다. 산업혁명의 동력은 무엇보다도 기술 변화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발명에 있었다. 경제성장은 기술 변화의 귀결이자 기술 변화를 추동하는 원인도 되었다. 새로 시작된 번영의 시대는 기술 변화와 경제성장의 공진화에 따른 선순환이 창출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은 서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일부 지역에만 한정되었다.

성장의 이륙과 동시에 벌어지기 시작한 국제적인 소득 격차

유럽 중심 세계의 경제성장에 있어 본격적인 이륙은 1820년대의 사건이었다. 산업혁명의 주역인 증기기관이 처음 상업화된 것이 18세기 초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륙에는 한 세기에 걸친 시차가 필요했던 셈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성장의 수렴을 예측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 일부 선진국들 모임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는 나라마다 격차가 확대되어온 과정이었다. 각국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본격적인 이륙이 개시되었던 1820년부터였다. 1820년에 가장 부유했던 나라들은 이후에도 평균 성장률이 가장 높은 축에 들었다.

증기기관 발명과 산업혁명 ⓒpixabay

세계경제의 전환과 국가의 운명

세계 경제사의 주요 전환점은 각국이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추이로도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는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 같은 기간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영국의 비중은 1/50 (2%)에서 1/4 (25%)로 상승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미국과 독일의 산업화가 두드러졌다. 영국의 비중은 1/8 (12.5%)까지 떨어졌는데 미국은 1/3 (33.3%), 독일은 1/4 (25%)까지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80년대까지는 소련과 일본의 산업화가 두드러졌다. 1980년대부터는 중국의 제조업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산업혁명 이전에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가장 비중이 컸던 지역이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역사의 반복을 거론하기엔 너무 이른 짐작일까.

산업혁명 이전은 어땠을까. 사실 산업혁명 이전에도 유럽 나라들이 정적인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성장과 쇠퇴를 거듭했다고 할 수 있다. 지속성을 가진, 추세적 경제성장이 아니었던 점에서 18세기 후반 이후와 달랐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특히 12세기 베네치아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해상 무역과 해외 투자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계약 관계로 최초의 주식회사 모델이 도입되었다. 위험과 수익의 배분 규칙을 제도화함으로써 거래 안정성을 제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피렌체와의 경합이 심해졌고 15세기 말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면서 부침을 겪어야 했다.

급속한 산업화를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 ⓒ자료사진

성장의 이륙 이후 반세기 만에 떨어지기 시작한 출산율,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벗어날 수 있었던 맬서스의 덫


영국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가 쓴 경제학 고전 『인구론』에서 유래하는 개념인 ‘맬서스의 덫’은 산업혁명이 있기 전 경제 상태에 대한 유력한 설명 방식이다. 그것은 1인당 생산량이 늘어나면 인구가 늘고 그렇게 인구가 늘면 다시 1인당 생산량이 하락하는, 그래서 빠져나오기 힘든 덫으로 비유되는 관계다. 맬서스의 덫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1인당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없는 것처럼 간주된다. 그렇다면 서방 세계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맬서스의 덫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설명은 이렇다. 먼저 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제 내 상품을 구매하려는 수요도 함께 늘어나는데 그러면서 혁신이 자극되고 그렇게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술이 발전하면 부모로서는 자녀 교육에 돈을 더 써야 할 수 있다. 이때 부모들은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출산율을 조절하게 된다. 실제로 1870년 이전까지는 인구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졌지만 그 이후로는 놀랍게도 출산율이 떨어졌고 그러면서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그런 식으로 생산성, 즉 1인당 생산량이 늘어도 인구가 다시 늘어나 맬서스의 덫에 갇히고 마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어떤가. 무엇보다도 인구 구성의 변화가 경제성장의 이륙에 처음 시동을 건 나라들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문제의 그 1870년대가 지나면서 출산율도 하락하기 시작했다니 우연치고는 신기하지 않은가. 한편 아동 사망률은 그보다 조금 이른 시점부터 떨어졌다. 다만 이와 같은 설명에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론은 18세기 초반 영국에서 인구가 정체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인구 증가가 없었는데 기술이 발전하고 부모들이 출산율을 조절할 이유가 있었겠냐는 질문이다. 역사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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