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호소는 들리지 않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비쳐온 중대재해처벌법 약화 시도가 결국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에 의해 실체를 드러냈다. 당정은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인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유는 “80만여개에 달하는 대상 기업이 충분히 준비하는 등 현실적 한계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영세기업들의 폐업과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장의 절박한 호소를 반영해 신속하게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 발주로 한국안전학회가 50인 미만 1천44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법상 의무를 이미 갖췄거나 준비 중이다’란 응답이 82%에 달했다. 3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법 전면 적용에 맞게 안전보건관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부와 여당이 이를 왜곡한 것이다.

제정 당시 소규모 사업장에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수용해 3년간의 유예기간을 줘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예시킨 취지와 달리 그렇게 준비하기로 한 시간 동안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해에만 1372명에 달하는 노동자의 안타까운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법이 처음 시행된 2021년보다 오히려 13명 늘어난 숫자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때 서두르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각성이 터져 나와야 할 일이다.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이유도 다시 주목해야 한다. 이들 업체들에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비용절감 요인이 가장 크다. 철저한 안전관리는 곧 시간과 비용의 지불이다. 안전장비 구입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의 작업시간은 사업장에서는 임금으로 환산된다.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사업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벌금형으로 처벌되는 안이한 법현실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 문제를 외면하고 중대재해발생률이 OECD 최악이라는 부끄러운 현실은 도저히 바꿀 수 없다.

게다가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대부분은 건설사의 다단계 하도급 업체거나 제조업체의 하청업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안전수칙을 모두 지키면서 하다가는 원청사와 계약한 공기와 납기를 맞출 수도 없거니와 최소한의 이윤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적용되면 하청업체들이 원청사에게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할 근거도 확보되기 때문에 재벌대기업들이 앞장서서 막고 나서는 비정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이 안을 갑작스레 내놓은 이유는 윤 대통령이 재벌총수들과 한 약속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현재까지 재벌총수와 재계 인사들과 밀착해 감세, 기업규제 완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등 친재벌 반노동 행보를 이어왔다. 일부는 실행에 옮겼고 일부는 남겨두었다. 재계는 이런 대통령에게 해외순방 동행과 엑스포 유치 노력 등 더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최고 권력자와 재계최고인사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기들 세상입네 하는 것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매일 끼어 죽고, 깔려 죽고, 떨어져 죽고, 질식돼 죽어가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진정 권력 놀음에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호소는 들리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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