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미만 사업장서 700명씩 죽는데, 또 중대재해법 적용유예? 이게 왜 민생이냐”

민주노총, 경영계·정부여당 ‘중대재해처벌법 호도’하는 주장에 정면 반박…“논의 열어둔 민주당도 개탄스러워”

산재사망 노동자의 작업화에 놓인 국화. 자료사진. ⓒ뉴스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4일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을 주장하는 경제계와 정부·여당의 논리를 “여론 호도”라고 규정하며, 이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국회 논의의 물꼬를 튼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도 “총선용 거래”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 논의가 내포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이같이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21년 제정돼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듬해 시행됐는데,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법 제정 당시 3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해 2024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정부·여당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위한 법 개정 논의를 두고 ‘민생’을 운운하는 데 대해 “법을 위반해서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데 그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유예해주는 건 민생이고, 사업장에서 죽어 나가는 노동자는 민생이 아니란 말인가”라며 “50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유예 연장이 단순한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적용 연장을 앞세워 법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정부의 사과’ 등을 전제로 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노동자 시민의 생명, 안전, 민생을 저버리고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자임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된다”고 날을 세웠다.

최 실장은 “민주당은 정부의 사과와 기업의 약속을 전제로 논의를 할 수 있다는데, 이것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이라며 “지금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사망으로 매년 700명 이상이 죽어나간다. 그런데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정부의 사과와 기업의 약속이 어떻게 현장을 개선하고, 어떻게 700명 노동자의 목숨을 막아낼 수 있나”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적용 기한 연장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은 민주당의 총선용 거래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다.

최 실장은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측에 면담을 요구했지만 한 달 가까이 묵묵부답인 상황이라고도 전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80%가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못 했다?
경영계 실태조사 결과 믿을 수 있나…정부·여당은 그대로 인용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과 50인 미만 중소기업 대표들이 지난 8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2023.8.31 ⓒ뉴스1

경영계는 그간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50인 미만 사업장 대부분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자체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보수 언론을 활용한 여론전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도 전날 경영계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80만여개에 달하는 대상 기업이 충분히 준비하도록 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 추진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태조사는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게 민주노총의 지적이다. 최명선 실장은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실태조사가 굉장히 차이가 난다”며 “4월에 조사했을 때에는 ‘법 준수가 가능하다’는 응답이 60%에 달했는데, 8월 조사에서는 ‘법 시행을 앞두고 준비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8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같은 기관에서 시행한 두 조사의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4월달 조사에는 제조업, 비제조업과 지역, 전국을 일정한 비율로 조사했는데 8월 조사에는 제조업을 93% 대상으로 조사하고 응답자의 41%가 대표이사, 23%가 임원이었다. 60%가 넘는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대답한 실태조사, 답이 정해져 있는 실태조사를 가지고 프레임을 형성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기중앙회의 실태조사를 더 들여다보면, ‘법 시행 2년이 지났음에도 준비하지 못한 이유’나 ‘적용유예 연장이 필요한 이유’를 묻는 질문엔 “안전전문 인력 부족”을 답한 비율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법 적용이 유예되면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엔 “안전보건 담당 인력 확충 또는 전문인력 채용”이나 “안전 전담 조직 신설 혹은 기존 조직 확대”라고 답한 비율은 각각 5.4%, 3.5%에 불과했다. 최 실장은 “이러한 답변으로 어떻게 기업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나”라며 “경영계의 조사는 믿을 수도 없고, 굉장히 ‘답정너’식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10개월 앞두고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인 미만 사업장 1,442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적용유예 연장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자체 발주한 조사 결과에 대한 발표도 하지 않고, 경영계 자료를 인용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게 민주노총의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노동부가 실태조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정책연구 보고서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통해 해당 자료를 확인해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의무 중 하나로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도록 하고 있다. 경영계가 법 적용 연기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는 지난달 6일부터 ‘중대재처벌법 적용유예 촉구’ 서명운동을 나서며 “대기업처럼 로펌에 맡길 여력도 없고, 안전 전문인력을 채용하기도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당장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기란 버거운 것이 현실”이라며 “이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업주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았을 때 중소기업은 폐업 가능성이 크고,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게 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법에서 규정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들의 의무를 보면, 50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는 조항들이 많다. 경영계가 법 시행에 따른 우려를 지나치게 과장해 여론몰이에 나선다는 의미다.

최 실장은 “안전보건 업무에 전담 조직을 둬야 하는 조항은 50인 미만 사업장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안전 관리를 하는 인력과 부서가 있으면 된다”며 “유해 위험 요인 점검 의무도 통상 위험성 평가로 갈음하도록 돼 있는데,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더구나 올해 5월 노동부가 위험성 평가와 관련된 고시를 개정해, 작은 사업장의 경우 간단한 체크리스트로만 해도 점검한 것으로 갈음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필요한 예산 편성 및 집행도 하한액 기준이 없고 사업장 사정에 맞게 하도록 되어 있고, 하도급에 대한 부분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원청이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부연했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은 노동자와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 정책들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민주노총의 입장이다.

최 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 외에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의무 조항으로 노동부나 행정기관의 시정 조치를 이행하는 의무,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되는 의무, 6개월에 한 번씩 안전 점검이나 안전 교육을 하고 거기에 대해 보고하고 이행 조치를 해야 하는 내용 등이 있다”며 “사실상 체계 구축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조치에 대해서도 의무를 부여하고있는데, 법 적용이 연기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연장되는 것이다. 이건 50인 미만 사업장의 제2, 제3의 비극적인 참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대책 실효성도 의문
민주노총, 5일부터 국회 앞 농성 돌입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3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서울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기념 촬영을 마친 후 회의실로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12.3 ⓒ뉴스1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대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사업장에 방문해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안전보건 컨설팅’이 있다.

최 실장은 “현장에서도 실효성이 있는 사업인지, 컨설팅을 한다면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문제도 계속 지적되고 있다”며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설명 자료를 보면, 컨설팅 사업은 2022년에 5천8백개 정도를 진행했고, 2023년에 1만 6천개를 진행했다. 그런데 컨설팅은 컨설팅을 진행할 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1년 동안 컨설팅이 가능한 사업장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83만개인데, 컨설팅을 1번이라도 실시하려고 하면 2023년 1만 6천개를 기준으로 볼 때 50년이 걸린다. 정부는 2024년에 2만 6천5백개를 실시하겠다고 하는데, 이 경우 25년 이상이 걸린다”며 “만약 83개 사업장에 대해 컨설팅을 실시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다고 하면 25년, 30년, 50년이 지날 때까지 계속해서 유예 연장을 해야 하는 것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50억 미만 건설현장은 공사 기간이 매우 짧고, 수개월마다 계속 새롭게 현장이 생긴다. (이곳을) 다 컨설팅을 받게 하겠다는 것은 완료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라며 “이것을 근거로 적용유예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적용을 회피한다는 주장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실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관리 인력을 지원해 주겠다’는 정부의 방안에 대해서도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환산하면, 1100개 정도의 사업장을 2년 한시 지원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현행법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의 선임 의무가 없는데, 인력 지원만 하게 되면 2년 뒤 중소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안전관리자를 채용하겠나”라고 따져 물었다.

민주노총은 국회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논의를 규탄하는 투쟁 계획에 나설 예정이다. 당장 5일에는 시민사회와 함께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연 후, 국회 회기가 마무리되는 내년 1월까지 농성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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