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은 1992년 UN에서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국제기구에서 기념하는 날들이 그렇듯, 이날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종식을 위해 정해졌다. 한국의 빈곤율은 2021년 기준 15.1%, 장애인의 빈곤율은 31.9%로 두 배 높다. 경제 선진국 한국에서 장애인 세 명 중 한 명이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 더불어 의무교육이 고등학교까지 확대된 상황임에도 무학이거나 초등학교 이하의 교육만 받은 장애인이 37.6%에 달한다. ‘세계 장애인의 날’이 선포된 해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날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를 위와 같은 몇 가지 수치로 다 이해하긴 어렵다. 그 수치들에 담긴 문제는 연쇄적이며, 장애인의 일상에 도사리고 또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한 고통은 재난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 몇백조 늘었지만, 여전히 1%
2021년 세계 장애인의 날에 시작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지하철 행동이 만 2년을 넘어섰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법을 제·개정하고 예산을 편성하라는 요구는 지하철 선전전 이전부터 계속 있었다. 전장연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 사망한 사건을 기점으로 철도를 점거하며 이동권을 요구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광화문 지하도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2012년 8월 21일부터 1,842일 동안 농성했다. 명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우리도 고향에 가고 싶다’고 외치며 시외버스를 막아섰고, 8차선 도로를 점거하며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외쳐왔다. 매년 각 정부 부처에 예산 요구안과 면담요청서를 보내고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있다. 그렇게 당사자들의 싸움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가 조금씩 전진해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전체 예산이 100조원대에 불과하던 2000년대 초반을 지나 650조원을 넘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장애인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1%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맞아 죽고, 집에서 불에 타 죽고, 가족들과 함께 생을 등지고, 또다시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정리해고 예고한 악덕 사용자 정부와 서울시
윤석열 정부는 “약자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은 보여주기식의 복지 예산을 소폭 늘리는 한편, 자격 있는 빈민과 자격 없는 빈민 사이의 경계를 강화하며 현재의 빈곤과 불평등을 유지 및 관리하는 것에 불과하다. 장애인 정책은 시설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이 여전하며, 장기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삭감됐다. 특히나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발달장애인의 동료지원가사업 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187명을 해고 위기로 내몰고 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서울형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중증장애인들이 노동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가 비정상이라며 노동시간 집회나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것을 현장에 나와 감시하고 있다. 400명의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내년도 1월 1일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자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 함께 나와 자립 기술을 훈련하는 거주시설연계사업도 폐지하며 105명의 전담인력이 해고 위기에 처해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도 공공일자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자기 효능과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발전시키는 경로이기도 하다. 고독과 고립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다양한 정책이 발표되어 실행되고 있지만, 그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유용하다. 특히나 자본과 노동의 불평등한 관계로부터 쓸모없는 사람 취급당하며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이들에게 공공일자리는 필수적이며, 노동과 자본의 불평등한 그 관계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도 공공일자리는 중요한 정책이다. 무엇보다 서울시장과 대통령 역시 공공일자리라는 점에서 권리를 확장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고 불평등을 확대하는 그들의 일자리보다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어 보인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하철 행동에 함께하자
정부와 서울시가 왜곡된 사실을 유포하며 전장연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한다. 이에 동조한 서울도시철도공사와 경찰의 탄압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하철 탑승을 막아서는 것을 넘어서 플랫폼 진입 자체를 원천 봉쇄한다. 이제는 가만히 서서 구호도 외치지 않고 피켓을 들고 있는 이들에게 ‘퇴거하지 않으면 연행하겠다’ 협박한다. 시민을 볼모로 잡지 말라고, 철도가 아니라 정부와 국회에 가서 요구하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한국의 지난 역사에서 장애인의 문제가 정치권과 사회적으로 이만큼의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었던가. 이만큼이나 집중되었음에도 바뀌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성장은 장애인의 삶을 볼모로 잡은 상태에서 진행되어왔다. 누군가 이윤을 취할 때 탈락한 이들 그 끝에 장애인이 있었다. 역대 정부와 정치인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낙수효과를 통해 빈곤이 없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해왔지만, 현실은 비정규직의 확산, 주거 불평등의 확대와 같은 더 큰 불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은 시민의 범주에조차 속하지 못한 이들이 권리를 가질 권리를 위한 싸움이다. 각자도생, 소수가 이윤을 독점하는 사회의 종말과 평등한 세상을 원한다면 전장연의 시민 불복종 행동 지하철 행동에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