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청 구조 만연...중대재해법 유예시 건설·제조업 노동자 직격탄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정부와 여당이 50인 미만 사업장(50억원 미만 건설현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기간을 2년 더 연장할 경우 산재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건설업과 제조업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만연한 원·하청 구조 탓에 안전관리가 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7월부터 실시한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일제 점검 결과 전국 건설현장 1만4567곳 중 68.1%인 9천923곳에서 3대 안전조치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공사 금액별로 보면 3억~10억원 건설현장의 위반 비율이 42.7%로 가장 높았고, 10억원 이상은 31.6%, 3억원 미만은 25.6%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이윤재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실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50억원 미만 규모면 빌라 등을 짓는 소규모 공사현장이다보니 소규모 업체들이 들어가서 공사를 한다. 안전관리가 부실하게 운영되고, 인력사무소를 통해 현장에 들어간 일용직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투입돼 일을 하다보니 노동환경이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며 “그 과정에서 사고가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고 집계조차 잘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관리 사각지대”라며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쏙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하동현 건설노조 충남건설지부장도 지난달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안전관리책임자도 없는 50억원 미만 공사현장에서 시급한 중대재해의 위험성이 확인돼서 고용노동부에 위험상황신고를 해봤자 고용노동부는 인력부족을 핑계로 사실상 나와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소규모 공사현장에서 사고 발생 빈도가 높은 이유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50억원 미만 공사의 경우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 면제 등 각종 법적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로운 상황에서 또다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면제해주는 것은 산재사고가 다발하고 있는 중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손덕헌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통화에서 “금속노조 기준으로 보면 470여개 사업장이 노조로 가입돼 있는데, 거기서 현대차와 기아차와 같은 대기업과 계열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단위의 영세사업장”이라며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는 등 대기업보다 작업 환경이 굉장히 열악하고, 그러다보면 사고 위험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여건 속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또다시 유예한다면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의 목숨은 담보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건설업과 제조업에 만연한 원·하청 구조도 중대재해 위험을 키우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된 중대재해는 지난해 1월 법 시행 이후 올해 9월 말까지 400건 넘게 발생했지만, 검찰이 기소해 재판에 넘겨진 건 25건에 불과하다. 5건은 불기소됐는데 그 사유는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마나 재판으로 넘겨진 25건 중 과반인 13건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했으며, 제조현장이 10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기소된 사건에서 중대재해를 당한 노동자 대다수는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자 소속이 원청인 경우는 8건이고, 원청과 하청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는 2건, 하청인 경우는 15건이었다.

하지만 이 중 원청과 하청 대표이사가 모두 경영책임자로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동시 적용되어 기소된 경우는 단 1건에 그쳤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원청 대표이사 또는 그룹회장이 기소됐다. 하청업체의 경우 1건을 제외하곤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했는데, 상시근로자수가 50인 미만이거나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의 건설공사인 관계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권 변호사는 통화에서 “원청과 하청이 동시에 기소된 1건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대부분 하청업체는 50인 미만 사업장이거나 50억원 미만의 건설공사인 경우가 많아서 처벌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며 “만약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27일부터 예정대로 전면 시행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범위가 더 넓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사용자의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을 높이는 것인 만큼, 노동자와 직접 고용관계를 맺은 하청업체에 대한 책임도 보다 적극적으로 물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소기업과 전문건설업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목전에 두고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지난 5일 윤제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촉구’ 서명운동 결과를 전달했다. 서명운동에는 중소기업 관계자 5만여 명이 참여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면 소규모 사업장은 기업 운영을 포기하거나 범법자만 양산될 우려가 높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을 해야 하는데 이를 할 여력이 없다며 유예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왜곡하고 과도한 공포심을 부추기는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이미 2년의 유예 기간을 뒀던 만큼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한국노총이 최근 낸 ‘50인 미만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사업 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의 핵심 요소인 위험성 평가, 안전 경영 방식 마련, 시설 개선 등 사업을 하는 데 평균 3개월에 3천100만원가량이 소요됐다. 게다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의 핵심인 안전보건업무 전담 조직 구성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의무 규정의 상당수가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예외로 인정된다.

결국 경영계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반대하는 건 기업 이윤을 위해 안전에 비용을 투자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 지부장은 건설업에선 중층적 하도급 구조가 대부분 형성돼 있다며 “도급구조의 하부로 내려갈수록 한정된 자원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성을 높이고 안전 등에 대한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생산성을 높이고 관리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도급을 받은 전문건설업체는 불법적으로 재하도급을 실행하면서 물량도급의 형태로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관리비용을 절감하며 안전관리비조차도 비용이 아닌 자신들이 가져가야 할 이윤의 일부로 인식해서 횡령까지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비판했다. 손 위원장도 “결국은 비용 부담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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