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사장에게 고 김용균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23.12.07 ⓒ민중의소리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원청 기업 대표에게 물을 수 없다고 대법원이 결론 내렸다. 김 씨의 유가족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7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업무상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에서의 사업주, 고의, 안전조치의무 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사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 20분께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20년 8월 원·하청 기업 법인과 김병숙 전 사장 등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이들이 ①컨베이어 벨트 등에 대한 방호조치 없이 점검 작업을 하도록 지시·방치하고, ②2인 1조 근무배치를 하지 않고 단독으로 점검 작업을 하도록 했으며, ③컨베이어 벨트 가동을 중지하지 않고 작업을 하도록 하는 등 주의의무 및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했고, 이로 인해 김 씨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게 공소사실의 요지였다.
그러나 1·2심 법원 모두 김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사장이 맡고 있던 당시 서부발전 대표이사는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하고 승인하는 역할에 그칠 뿐, 작업 현장의 구체적 안전 점검과 예방조치 책임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에게 있었다는 이유였다.
함께 기소된 당시 태안발전본부장인 권 모 씨는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김 씨 사망의 원인이 된 석탄 취급설비와 위탁용역관리 관련 업무는 기술지원처가 담당해 김 전 사장과 마찬가지로 직접적·구체적 주의 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서부발전 법인도 김 씨와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며, 대법원에서 이날 확정됐다.
반면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기술지원처장과 연소기술부·석탄설비부 책임자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전 사장, 태안사업소장 등 10명과 발전기술 법인은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으며, 이 역시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들은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김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최소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요구되는 안전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됐지만, 대부분 금고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결과적으로 김 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2심 법원은 “이 사건은 피고인 중 누구 한 명의 결정적인 과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각자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태만히 한 결과가 서로 중첩돼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 것으로 개개인의 과실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할 수 없다”며 집행유예 이유를 밝혔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사장에게 고 김용균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23.12.07 ⓒ민중의소리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대법원 판결을 방청하다가 대법관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한 마디의 말을 듣고는 얼굴을 손에 파묻으며 눈물을 흘렸다.
법정 안에서 김 대표는 “불복한다”며 “억울한 사람한테 왜 법정이 이러는가. 왜 힘 없는 약자를 보호해주지 못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제 아들이 죽었다. 당신들 아들이 죽으면 법정에서 이렇게 결론을 낼 것이냐”며 “그런 식으로 재판을 할 거면 당장 옷을 벗으라. 이게 합당한 판결이냐”고 따졌다. 그는 이후 대법원 밖에 나와서도 “용균아, 엄마가 미안하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용균이 사고가 난 다음에 정부 차원에서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런데 법관들은 정부의 특조위의 결과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거꾸로 판결을 내렸다”며 “저는 그래서 불복한다. 제 개인적으로 아들의 잘못이 아닐 거라는 그냥 막연한 판단에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서부발전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 김병숙 전 사장이 현장을 잘 몰랐다고 한다면 그만큼 안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냐”며 “그런데도 무죄라고 한다면 앞으로 다른 기업, 다른 기업주들이 안전 보장 없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죽여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정말 힘이 없다는 게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저는 거대권력 앞에 무너지는 사람들의 인권을 찾기 위해, 이 길에서 막힌다고 해도 또 다른 길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고인의 직장 동료였던 이태성 발전비정규직노조 전체대표자회의 간사도 “용균아,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 간사는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너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기 위해 정말 죽도록 싸웠지만, 여기까지인가 보다”라며 “하지만 절대로 우리는 저들을 용서하지 않고 다시 싸우겠다.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특조위원으로 활동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적어도 법상 의무를 지키지 않았던 서부발전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며 “법(산업안전보건법)이 바뀌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원이 솜방망이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김 씨가 숨진 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요구가 잇따랐고, 이듬해 1월 경영계의 반대를 뚫고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시대착오적인 판결을 계속 내리고 있다는 것이 권 변호사의 지적이다.
김 씨의 유족을 대리한 박다혜 변호사도 “투쟁을 통해서 사측의 사과를 받아냈고, 김용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고, 정부의 사과도 받았다. 그리고 특조위를 통해서 이 사건에 얽힌 여러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무엇이 김용균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그 발전 현장의 위험성에 대해서 모두 확인했다. 그때 이미 책임은 다 확인됐다”며 “오늘 대법원 판결은 그 책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터 현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법원의 실패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나흘 뒤면 김 씨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5년이 된다. 이에 따라 ‘김용균 5주기 추모위원회’가 구성돼 전국 곳곳에서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전날에는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현장 추모제가 열렸으며, 주말인 9일에는 서울 보신각 앞에서 추모대회와 행진이 진행된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사장에게 고 김용균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23.12.07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