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이루어졌다. 최소한 대법원에서는 2018년 사망한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다르게 해석되길 기대했다. 우리나라 최고 재판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역사를 퇴행시킨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미 유사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서울교통공사(구 서울메트로) 구의역에서 승강장안전문을 수리하던 ‘김군’이 선로로 들어온 전동열차에 치어 사망한 사실이 있다. 김군 또한 똑같은 공기업의 하청 노동자였다. 그러나 2019년 8월,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 1부(재판장 유남근)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스크린도어 정비용역업체 은성피에스디(PSD) 대표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서울메트로 이정원 전 대표는 대법원 상고 결과 벌금 1천만원 형을 확정 받았다.(한겨레신문 2020년 5월 2일자)
나는 김군 사망 이후 서울시 위촉 조사위원으로 활동했고 김용균 사망으로 역시 국무총리실 위촉 조사위원으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두 사건을 아주 가까이에서 접했고 그 형태와 구조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2019년의 대법원 결정과 한참 후인 2023년의 대법원 결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서울메트로의 하청 사업주는 원청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소외된 부서일 뿐이었고 원청은 하청과 하청 노동자의 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하청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근본적인 질문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는 김군은 이미 세 번째 승강장 유지보수 업무 중 사망한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명의 사망자도 하청소속 노동자였다. 당시 승강장 유지보수 업무를 도급으로 전환한 곳은 1~4호선이었고 도급으로 전환하지 않았던 5~8호선에서는 단 한 명의 중대재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같은 업무를 해도 원청노동자는 사망하지 않고 하청 노동자만 사망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메카니즘이 있었고 ‘도급은 위험을 생산한다’는 가설이 충분히 입증되었다.
김용균 사건과 판박이였던 구의역 김군 사건, 판결은 달랐다
김용균 사고 조사결과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당시 채택되었던 조사위원회의 결과에 따르면 부상사고 발생 건수(2010년~2016년)는 발전회사(18건)과 협력사(377건)가 약 21배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부상자 수도 발전회사(19명)와 협력사(398명)가 약 21배 차이가 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사고는 협력사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며 특히 협력사는 사내하청의 도급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주는 이러한 재해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협력사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시설 개선 요구에도 눈감아 온 사실이 확인되었고 특히 김용균의 작업공정은 매뉴얼에 적시된 대로의 2인1조 유지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작업장 조도와 작업환경의 열악성은 법을 어기는 수준이 아니라 극악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하청 사업주가 만든 것이 아니라 원청의 시설 그 자체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2022년 2월 10일 제1심에 이어 2023년 2월 9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대표이사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는 물론 산안법 위반 책임도 인정되지 않았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도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산안법 위반 행위에 대해 2심에서는 모두 무죄로 선고되었다. 한국서부발전 임직원은 아무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책임을 지지 않았고 다만 태안발전본부의 중하위급의 관리자들만이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인정되었다.
대한민국 사법부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없던 시기였다고 하더라도 경영책임자 단위에서는 아무도 죄를 진 자가 없다는 1·2심 판결, 더 나간 오늘의 판결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서울지하철과 비교해도 퇴보한 판결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현행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되어 있다. 그 ‘현행법을 지키지 않은 자’에서 경영책임자 단위가 모두 빠져 나가게 된다면 경영책임자들은 노동자의 안전보건에는 관심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 작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경영책임자 단위는 무책임하고 무관심하고 심지어 산업재해를 조장해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산업재해, 노동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는 경영 일반의 행위가 아닌 것이 됩니다. 이 또한 상시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의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부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노동자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행위는 분명히 경영책임자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이며 생산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영역이다. 그대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취지를 아는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