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능력은 세습 안 되는데”...재벌 3·4세들의 초고속 승진

더 빨라지는 승진 속도...“기업 뿐아니라 경제에도 부작용” 우려도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자료사진) 2022.06.20 ⓒ민중의소리

최근 진행된 대기업 임원 인사에서 총수일가 3·4세가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초고속 승진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향후 경영 승계를 염두에 둔 인사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경영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3·4세들의 초고속 승진이 기업은 물론 국내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8일 재계에 따르면, SK·롯데·한화·GS·HD현대 등 대기업 그룹이 최근 진행한 인사에서 30~40대인 총수의 자녀들이 승진을 통해 임원이나 주요 보직을 맡게 됐다.

SK그룹은 지난 7일 발표한 2024년 정기임원인사에서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34)을 임원급인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최 본부장은 지난 2017년 SK바이오팜 경영전략실 전략팀에 선임 매니저(대리급)로 입사한 이후 2019년 휴직했다가 2021년 다시 회사로 돌아와 전략투자팀을 맡았다. 입사 6년 만에 대리에서 곧바로 임원으로 승진한 것이다.

롯데그룹에서는 지난 6일 발표한 내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37)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신 전무는 향후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겸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을 맡게 된다. 일본 롯데에서 근무해 온 신 전무가 맡은 한국에서의 첫 보직이다.

신 전무는 일본 노무라증권의 싱가포르 지점 등에서 근무하다 2020년 일본 롯데의 지주사인 롯데홀딩스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지난해 한국 롯데 산하 롯데케미칼의 일본지사에 합류하고 곧바로 같은 해 말 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입사한 지 3년 만에 '부장-상무-전무' 승진이 이뤄졌다.

한화그룹도 지난달 김승연 회장의 3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34)을 지난달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2014년 한화건설에 과장으로 입사한 김 부사장은 2017년 폭력 사건으로 한화건설 팀장에서 물러난 뒤 2020년 말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담당 상무보로 복귀하면서 승진 속도가 빨라졌다. 2021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프리미엄레저그룹장(상무)을 거쳐, 지난해 10월 전무로 승진했으며, 또다시 1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김 부사장은 현재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한화로보틱스의 전략기획 담당도 겸하는 등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한화 그룹은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40)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38)에 이어 김 부사장까지 3세 경영 체제를 완성한 모양새다.

GS그룹이 최근 발표한 대규모 인사에서도 총수가 4세들의 임원 승진이 있었다. GS건설은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사장(44)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2002년 GS칼텍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허윤홍 사장은 2005년 GS건설로 자리를 옮긴 뒤 3년마다 승진했다. 2013년 상무, 2016년 전무, 2019년 부사장을 거쳐 2019년 연말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장남인 허철홍 GS엠비즈 대표(44)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허정수 대표는 2009년 ㈜GS에 입사한 뒤 지난해 M&M신사업실장 전무로 승진, 올해 대표직을 맡은 지 1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허명수 GS건설 상임고문의 장남인 허주홍 GS칼텍스 부문장과 허진수 GS칼텍스 상임고문의 장남인 허치홍 GS리테일 본부장도 이번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두 사람은 모두 1983년생으로 동갑내기다. 허주홍 부문장은 2012년 GS칼텍스에, 허치홍 본부장은 2009년 GS글로벌에 입사했다. 그룹 내에서 경력을 쌓은 기간은 비교적 길지만, 최근 승진 속도가 빨라졌다. 허주홍 본부장은 지난 2021년, 허치홍 본부장은 2022년 상무로 승진한 지 1~2년만에 전무 자리에 올랐다.

HD현대그룹에서도 지난달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HD현대 사장(41)의 부회장 승진을 발표했다. 지난 2009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한 정기선 부회장은 2021년 10월 사장으로 승진한 뒤 2년여 만에 부회장이 됐다.

HD현대는 정몽준 이사장이 총수로 있지만 현재 권오갑 회장이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경영 전반에 나서면서 오너 경영 체제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외에도 LS그룹에서는 구자열 LS그룹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부사장(41)이 LS MnM(옛 LS니꼬동제련) 최고운영책임자로 승진했으며, 박삼구 금호그룹 전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건설 사장(48)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또 코오롱그룹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외아들인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대표이사 사장(39)을 지주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시켰으며, 삼양그룹은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의 장남 김건호 경영총괄사무(40)를 삼양홀딩스 사장에 올렸다. 2002년에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한 박세창 사장을 제외하고, 이들 대부분 2012년에서 2014년 사이 그룹에 입사했다. 입사 10년여 만에 사장급 이상으로 승진한 것이다.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전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부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삼남 김동선 부사장, HD현대그룹 정몽준 총수의 장남 정기선 부회장, GS그룹 총수가 4세인 허철홍 GS엠비즈 대표이사 부사장, 허윤홍 GS건설 대표 ⓒ민중의소리

총수 자녀 승진 속도 더 빨라져..."경영 능력은 세습되지 않아"


총수일가 3·4세들의 임원 승진 속도는 2세에 비해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산 순위 100대 그룹에 재직 중인 총수일가 827명 중 사장단에 포함된 199명의 이력을 분석한 결과, 총수일가 3·4세들은 평균 28.7세에 입사해 4.1년 뒤인 32.8세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2세들이 입사에서 초임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4.7년(34.7세)에 임원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승진 간격이 당겨졌다.

임원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는 속도는 2세에 비해 느려졌지만, 승진 나이는 어려졌다. 임원에 오른 3·4세가 사장으로 승진하는 기간은 평균 8.4년이 걸렸으며, 평균 나이는 41.2세였다. 2세의 경우에는 평균 7.8년이 걸려 사장으로 승진했으나 평균 나이는 42.6세로 조금 더 많았다.

반면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오르는 기간은 3·4세가 더 빨랐다. 2세들은 평균 6.5년이 소요되었으나, 3, 4세들의 평균 기간은 4.8년으로 1.7년이 줄어들었다. 최연소 사장은 올해 초 사장에 임명된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었고, 최연소 부회장은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으로 나타났다.

이들 총수가 3·4세들의 초고속 승진은 향후 경영권 세습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 등 대기업의 세습 과정에서 탈·불법적 행위가 지적돼 온 것을 고려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재벌 총수들이 다음 세대 세습을 준비하는 것 같다"면서 "늘 경영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무리수를 두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지적돼 왔는데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짧은 근무 기간에 초고속 승진을 하는 총수가 자녀들은 경영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이마트가 올해 상반기 394억원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하면서 2세로 경영권을 물려받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지난 10월 이뤄진 신세계의 임원 인사에서 정 부회장의 측근으로 평가받던 강희석 이마트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정 부회장에 대한 질책성 인사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들 기업들이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업의 경영뿐 아니라 국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 교수는 "경영 능력은 세습되지 않는다. 부자는 3대 간다는 말이 있듯이 3세까지 세습하는 것도 무리수"라며 "세습자본주의라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만큼, 재벌 그룹만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고, 경영할 수 있는 훈련도 안 된 다음 세대들을 경영 맡게 되면 열심히 해서 임원까지 승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게 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그 회사를 회피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수가의 무분별한 경영 세습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불법·편법 세습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적어도 능력 없는 총수가 3·4세들이 경영권을 갖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전혀 없다"면서 "불법적인 세습이 가능하니 초고속 승진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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